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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에 산다!/와이프 따라 미국 가는 남자 2

2-18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도 허점은 있더라

by jcob why 2023.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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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결정을 하고, 한국에서 십 년간 살면서 닦아놓은 기반을 다 포기하고, (특별히 포기한 것이 대단한 것들은 아니다만) 모든 것을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야 하는 과정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엄청난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자각이 부족했다. 워낙 성격이 괴팍해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일상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 때문에, 평일의 일상 루틴과 주말의 일상 루틴이 거의 깨지지 않은 상태로 마지막 일주일까지 맞이했다.

마지막 날까지 일상은 일상이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몇 가지 무리한 결정이 우리를 괴롭게 했다. 가장 큰 것이 집과 자동차였다.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을 조금 더 빨리 정리하고 호텔에서 며칠 생활하거나 아니면 조금 멀긴 해도 친척 집에서 며칠 묵을 수 있었으면 조금 더 좋았을 뻔했다. 마지막 하루까지 집에 있다가 미국으로 출국하겠다는 생각에 집에서 나가는 일정을 출국 하루 전으로 정했다. (정말 무리인 결정이었다) 마지막까지 집에 있다가 하루만 공항에서 가까운 영종도의 호텔에서 하루를 묵고 출국하는 일정이다.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집이 아닌 호텔을 전전한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부담스러웠는데, 가족이나 친척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우리의 형편상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마지막 하루까지 집에 머물다 보니, 침대나 식탁과 같은 필수 가구를 내놓거나 버리는데 시간이 지체되었고, 정말 출국 전날까지 물건을 버리고 짐을 정리하는 숨찬 이주 과정을 겪고야 말았다. 물론 세 들어 사는 입장에서 해외 이주를 앞둔 세입자를 마지막 하루까지 머물게 해 준 집주인이 매우 고맙기는 했지만 우리 가족의 이주 과정이 꽤나 고되어 아내나 아이를 고생시켰음엔 미안한 마음뿐이다.

거기에 재활용 센터에 판매한 대형 가전을 출국 전전날(토요일, 출국일은 월요일이었다) 모두 수거해 가는 바람에 마지막 하루는 정말 찜통에서 생활해야 했다. 상상해 보라. 7월의 한여름 더위에 에어컨 선풍기가 없는 아파트에서 하룻밤이라니. 정말 고통스러운 1박이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의 삶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던 나는 굳이 차를 구매하지 않고 장기렌터카를 계약해 사용하고 있었다. 2022년이나 2023년엔 반드시 해외로 이주할 것이라고 굳은 다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용하고 있던 차도 다시 업체에 반납을 하는데 일정이 꼬여 금요일에만 반납이 가능했다. 이틀간은 자동차 없이 생활해야 했다. 물론 일정상 주말에는 특별히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 일정이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차가 없이 생활하는 것은 꽤나 불편했다. 전에 유학을 떠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나, 유학생 시절 결혼하고 함께 출국하는 준비와는 천지차이인 듯했다. 그때는 한국에서 도울 수 있는 가족도 있었고, 한국의 기반을 완전히 버린 것도 아녔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에 남겨 놓고 가는 것은 주민센터로 이전한 주소뿐이다. 그리고 아내와 나는 가장이기도 했다. 우리가 모든 과정과 그 안에서의 어려움을 모두 둘이 책임져야 했다. 그 책임을 꽤나 막중했다.

출국일이 다가오고 모든 준비가 실전으로 다가오면서, 잘 준비만 하면 순조로울 것이라 믿던 나의 믿음이 조금씩 깨어지기 시작했다. 괜히 사소한 문제 하나하나가 지금까지 힘들게 견뎌왔던 모든 과정을 수포로 만들어버릴 것만 같았다. 하루하루 불안감은 극에 치달았다. 약간 반쯤 영혼이 나간 상태에서 마지막 일주일을 보냈던 듯하다.

마지막 하루까지 일상을 살다가 다음날 딱 떠나는 그런 기적과 같은 해외 이주는 없다. 물론 전날까지 일상을 살기는 했지만, 그 덕에 이주 전날부터 도착일까지 아주 헬, 또 헬이었다. 나는 영혼이 반쯤 나가 있었고, 그런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아내는 격분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딸아이는 알게 모르게 극도의 불안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그래도 주소는 주민센터로 옮기고, 관리비 정산도 마치고, 차는 업체에 반납하고, 통장, 카드 정리에 환천하고, 가구 다 버리고, 가전 모두 수거해 가고, 집 정리까지 모두 마치고. 그렇게 2022년 7월의 마지막 날, 한국에서 마지막 살던 집에서 나와 공항 근처 호텔로 향했다.

마음이 헛헛했다. 이제 진짜 이곳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구나 하는 생각에. 마지막에 이주 준비로 너무 바쁜 나머지, 내 마음에게 정리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모든 것을 두고 떠나는 건데…

Photo by Mantas Hesthave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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