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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에 산다!/와이프 따라 미국 가는 남자 220

2-20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 온 지도 벌써 8개월이 되어간다. 미국 이주에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나서 비행기를 탈 때까지도 놀라움의 연속이었지만, 미국에 오고 나서도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많은 일들은 대부분 주부남편아빠의 미국정착일기에 적었다)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고 나면 해피 엔딩으로 그 이야기를 마칠 것 같지만, 우리의 인생은 그렇지 않다. 삶은 이어진다. ​ 지난 몇 개월동안 우리 가족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고, 기쁜 일도 속상한 일도, 그리고 마음을 어렵게 하는 일도 계속됐다. 지금은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을 한 것도 같지만, 여전히 오늘도 마음을 힘들게 하는 일들이 존재한다. 사십 넘어 박사 과정을 도전하는 아내의 여정도 장애물의 연속이고, 고작 사십에 직업을 은퇴하고 새로운.. 2023. 3. 21.
2-19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사실 반년 전의 일인데, 글을 쓰다 보니 제법 생생한 기분이 들어 현재형 시제로 적어봅니다. 물론 어제일은 아녀서 일부 기억이 윤색된 부분도 있겠지만, 그래도 경험하고 본 것들 말고 기분과 마음 가짐은 아직도 제법 생생한 것 같아요. 제 다른 글들을 보셨다면 이미 미국에서 생활한 지 200일이 넘은 걸 아실 테니, 현재형 시제로 혼란을 겪으시진 않겠죠? ㅎㅎ ​ 7월에서 8월로 넘어가는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됐다. 밤새 잠을 거의 못 잤다. 한창 더울 때인데, 밖은 흐리고 비도 온다. 어제 아침, 2년 동안 살던 아파트를 완전히 비워주고, 온 가족이 짐 십수 개를 들고 인천공항 근처 영종도에 위치한 호텔에 도착했다. 콜밴을 타고 왔는데, 기사님이 짐이 너무 많다고 투덜투덜하신 것만 빼면 안전하게 도착했다.. 2023. 3. 14.
2-18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도 허점은 있더라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결정을 하고, 한국에서 십 년간 살면서 닦아놓은 기반을 다 포기하고, (특별히 포기한 것이 대단한 것들은 아니다만) 모든 것을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야 하는 과정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엄청난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자각이 부족했다. 워낙 성격이 괴팍해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일상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 때문에, 평일의 일상 루틴과 주말의 일상 루틴이 거의 깨지지 않은 상태로 마지막 일주일까지 맞이했다. ​ 마지막 날까지 일상은 일상이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몇 가지 무리한 결정이 우리를 괴롭게 했다. 가장 큰 것이 집과 자동차였다.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을 조금 더 빨리 정리하고 호텔에서 며칠 생활하거나 아니면 조금 멀긴 해도 친척 집에서 며칠 묵을 수 있었으면 조금.. 2023. 3. 7.
2-17 유학 출국 일주일 전에야 퇴사한 아내 *참고로 이 주제로 글을 쓰려하니 아내에게 엄청 미안합니다. 내 딴에는 아내가 이주 준비에 스트레스를 덜 받도록 제가 일처리를 하기 위해 먼저 퇴사한 것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마지막 1분 1초까지 일하다가 미국에 가는 것이 되어버렸네요. 사, 사랑합니다!! ​ 모든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짐도 하나둘씩 처분되어가고 있었고, 어찌 되었든 아이의 학교문제도 모두 해결되었다. 자질구레한 행정 업무가 남아있기는 했지만, 그런 것들은 출국하기 전주에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당장 급할 것은 없었다. 8월 초가 출국이니, 7월 셋째 주, 넷째 주가 되어서는 나와 아이의 모든 신변 정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 ​ 하지만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그건 아내의 퇴사다. 전의 글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 2023. 2. 28.
2-16 미국 이주의 정석은 ‘버리기’입니다 미국 비자 발급은 우리 가족의 이주 준비 속도를 확 끌어올렸다. 그전까지는 괜히 이렇게 집을 부치고 물건을 줄이고 있는데, 비자가 나오지 않으면 어쩌지? 하면서 이것저것 미루고 있었는데, 비자가 나온 시점부터는 진짜 빠르게 이주 준비를 해야 했다. 실제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 학교를 조금 더 빠르게 확정 짓고, 빠르게 서류 작업을 진행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학교 오퍼를 받아들인 시점은 학교에서 요구한 데드라인에 근접해서였는데, 그러다 보니 여러 서류 작업의 시간이 걸리고 비자를 받는 시점도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또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어쩌면 아내의 평생 커리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학교 선택이었고,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살아야.. 2023. 2. 21.
2-15 비자 인터뷰, 아는 게 더 무섭더라 어찌어찌 여러 준비 사항들을 하나씩 해결해 가고, 가슴 졸였던 각종 서류의 굴레에서도 벗어났지만, 우리 앞에 나타난 다음 관문은 비자 발급이었다. 관광이 아닌 목적으로 미국을 가본 사람들이라면 미국 비자 발급은 굉장히 긴장감을 주는 과정 중에 하나다. 팬데믹이 지속되면서 해외 출입국이 제한되는 상황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비자 발급을 받는 절차도 과거와 차이를 보였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비자 인터뷰의 규모가 확 축소되었고, 이에 따라 미국 비자 인터뷰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 (물론 우편을 통한 인터뷰 면제 비자 신청 방법도 생겼지만, 여러 조건 상 우리는 그대로 인터뷰를 보기로 했다) 모든 서류를 모두 구비한 시점이 6월 초였는데 그때 예약할 수 있는 인터뷰 시점이 8월이었다. 이럴 수가. 비.. 2023. 2. 14.
2-14 취학(의무교육) 유예자가 된 딸아이이 우리나라의 초등, 중등 교육은 의무교육이다. 뭐, 너무 당연한 소리다. 모든 국민이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고,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 한다. 의무 교육은 사실 이를 뛰어넘는 이야기다. 모든 국민은 초등, 중등 교육을 받을 의무가 있다. 이에 대한 예외 사항은 아주 제한적이다. 거의 백 퍼센트에 가까운 학령인구의 어린이들이 의무교육으로 학교에 다니고 있기에, 어린이 보호 법규와 제도 장치도 학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위기 가정의 어린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점검도 학교를 통해 이루어지고, 가정 폭력도 학교를 통해 발견된다. 이런 사회적 장치가 문제가 있거나, 불편하거나, 예외적 상황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너무나 식상한 단어라고나 할까? 그저 선언적인 내용이라고만 생각한 것이다. 도대체 누가 초등학.. 2023. 2. 7.
2-13 아내의 예방 접종 기록을 찾습니다 미국의 학교에서는 입학 예정 학생들에게 예방 접종 기록을 요구한다. 기억이 다 나지는 않지만, 대부분 필수 예방 접종을 위주로 해서 기록을 요구한다. 거기에 팬데믹 시기라 코로나 19 예방 접종 기록 역시 요구했다. 미국에 가서 학교에 다니게 되는 사람이 두 명, 한 명은 아내, 다른 한 명은 우리 딸이다. 아이 같은 경우에는 예방 접종 기록이 전산화되어 있어서 기록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 우리 딸 같은 경우는 돌까지 미국에 있었는데, 미국에서 받았던 접종 기록 같은 경우는 (실물) 접종 카드를 처음 방문했던 소아과에서 보고는 전산 기록으로 넣어 주셨다. 그래서 만 열 살인 지금까지의 기록이 잘 남아 있었다. 질병관리본부(질병청) 홈페이지에서나 정부 24를 통해 예방 접종 증명서를 발급받으면 되었기 때문.. 2023. 1. 31.
2-12 출국을 앞두고 아내 건강검진에서 이상 소견이 발견됐다 미국은 의료보험도 비싸고, 의료비도 비싼 나라다. 출국하기 전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워낙 악명이 높았기에, 미국 출국이 확정된 이후로는 아내와 나, 딸아이까지 필요한 건강검진을 열심히 받았다. 아내는 회사에서 매년 건강검진을 지원해 줘서 이를 예약해서 받았고, 나 같은 경우는 회사에서 2년에 한 번 건강검진을 하는데, 다행히 올해가 검진받는 해여서 재빠르게 검진을 신청했다. 평소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검진을 미루다 미루다 연말이 되어서나 받고는 했는데, 올해(2022년)는 해가 넘어가자마자 검진을 신청했다. 아이는 초등학교에서 의뢰한 소아과 검진으로 건강검진을 받고, 보다 중요한 치과와 안과를 별도로 검사를 진행했다. ​ 건강 검진은 언제 받아도 겁이 난다. 괜히 몸 어디에 이상이 있을 것만 같고, .. 2023. 1. 24.
2-11 미국 가는 이삿짐, 소포 박스 여섯 개 10년 전 뉴저지에서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나와 아내가 최종적으로 싼 짐은 소포 박스 여섯 개였다.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다 보니 많지는 않았지만 침대니 서랍장이니 해서 짐이 꽤나 늘어났었고,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한 이상 모든 짐을 다 처분해야 했다.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를 이용해 정말 염가로 가지고 있던 가구나 전자제품들을 모두 처분했고, 꼭 가지고 가야만 하는 짐만 추리고 보니 비행기에 실을 수 있는 짐을 제외하고 가장 큰 소포 박스 여섯 개가 나왔다. 그렇게 육 년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올 때 내게 남은 것이 소포 박스 여섯 개였다. 10년 만에 다시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향하게 되자,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챙길지가 또 큰 고민거리가 되었다. 10년 전에는 갓난쟁이.. 2023.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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