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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이주6

2-18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도 허점은 있더라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결정을 하고, 한국에서 십 년간 살면서 닦아놓은 기반을 다 포기하고, (특별히 포기한 것이 대단한 것들은 아니다만) 모든 것을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야 하는 과정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엄청난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자각이 부족했다. 워낙 성격이 괴팍해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일상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 때문에, 평일의 일상 루틴과 주말의 일상 루틴이 거의 깨지지 않은 상태로 마지막 일주일까지 맞이했다. ​ 마지막 날까지 일상은 일상이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몇 가지 무리한 결정이 우리를 괴롭게 했다. 가장 큰 것이 집과 자동차였다.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을 조금 더 빨리 정리하고 호텔에서 며칠 생활하거나 아니면 조금 멀긴 해도 친척 집에서 며칠 묵을 수 있었으면 조금.. 2023. 3. 7.
희망 회로 2 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장래 희망을 정한 후로 난 20년이 넘게 영상과 관련된 공부와 일을 하면서 살았다. 대학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방송국에서 조연출을 했고, 유학을 가선 영화과를 다니며 애니과 사람들과 단편 애니 프로듀싱을 했다. 한국에 돌아와선 누구나 다 아는 그 애니메이션 만드는 회사를 다니며 애니메이션을 기획 제작하는 프로듀서로 8년을 다녔다. 미국행을 결정하면서 아내가 공부하는 동안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을 해 봤는데, 앞의 글에서처럼 그런 작전(?)이 먹히지 않으면, 유튜브를 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사실 유튜브라는 매체가 내게 잘 어울리는 매체는 아니다. 학교를 다니던 시절엔 단편 영화만을 만들었다. 짜인 각본에 의한 연기를 찍고, 이를 기민한 편집으로 잘 만들.. 2022. 10. 18.
D+1(2) 다시, 시작. 리셋이 싫어 이사를 하면 버릴 짐들과 그러지 말아야 할 짐들을 구별해야 한다. 그런데 그 필요가 이사 전과 이사 후가 그렇게 늘 달았던 것 같다. 주로 버리지 말아야 할 짐들엔 굉장히 삶이 윤택해지는 물건들이 많고, 버릴 짐들엔 마치 공기와 같아서 어디에 쓰는지 눈치채지 못하는 물건들이 많다. 그래서 막상 이사해서 짐을 열면 이건 왜 들고 왔지 하는 물건과 도대체 그걸 왜 버렸지 하며 후회하는 물건들이 꼭 생기게 된다. 이번에도 그런 물건이 한가득이다. 리셋의 달인인 우리 가족은 (이런 식으로 짐을 다 버리고 먼 거리 이동을 하는 이사를 한 적이 서로 워낙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름 합리적으로 생활에 필수적인 물건들을 잘 골라내고 지나치게 삶의 질만 연관된 물건들은 잘 버리고 왔다고 자부했다. 적어도 짐을 쌀 때는.. 2022. 10. 6.
D-3 한국에서의 마지막 평일 오늘 오전엔 장기렌트를 하고 있던 차량을 반납하고, 딸아이의 휴대폰을 해지했다. 이번 미국 이주를 준비하기 전부터 언제든 해를 갈 수 있단 생각에 치를 긴 기간 할부로 구매하거나 휴대폰을 약정을 걸어놓거나 하지 않았다. 보통은 해외 이주를 하게 되면 차를 팔거나 휴대폰/인터넷 약정을 파기하는 게 꽤나 까다롭고 번거로운 일이라는데, 우린 다행히 그런 번거로운 일은 없었다. 자동차 같은 경우는 그저 아침에 탁송 기사님이 오셔서 처를 가지고 가시니 끝이었고, 아이 휴대폰은 가족관계 증명서와 내 신분증으로 십 분 만에 해지를 끝냈다. 이제 남은 건 출국 당일날 아내의 휴대폰을 알뜰폰으로 교체하는 일만 남았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티브이 인터넷 기사가 안 왔다. 내일 직영점에 모뎀과 셋톱박스를 반납해야 한다... 2022. 9. 28.
유학 준비를 시작한 아내 아내는 21년 4월부터 유학 준비생이 되었다. 팬데믹으로 모든 움직임이 멈춰 있던 시기, 어쩌면 큰 도박이었다. 지금 준비하면 22년 가을에나 학교를 다니게 될 텐데. ‘그때 정도 되면 괜찮겠지. 그리고 지금은 다들 겁먹어서, 유학 같은 거 못해.’ 아내는 그때 코로나 때문에 1년 넘게 일을 쉬고 있었다. 아이가 1년 훌쩍 넘게 원격 수업을 하고 있고, 내 직장은 재택근무를 하지 않아 꼬박꼬박 출근을 해야 했다. 마침 이직한 회사에서 불만이 쌓여 있던 아내는 과감히 사직서를 던졌으나, 1년 가까운 경력 단절에 아내의 자존감은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네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을까? 내가 표현은 잘 못해주는 편이지만, 아내는 진정한 이 시대의 능력자다. 육아와 가사를 내가 같이(?.. 2022. 9. 27.
D-5 우왕좌왕 제이콥 씨 아침에 눈을 떠 거실을 바라보는데 마음이 무겁다. 아직도 많은 물건들이 가방도 쓰레기 봉지도 아닌 곳에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하나씩 차근차근하면 된다며 초조해 말라고 하지만, 난 가슴이 답답해 온다. 나만의 특징인 것 같다. 시간을 계산해 보면 당연히 이번 주 주말까지 마칠 수 있음을 알지만, 그냥 하루빨리 이 모든 물건들이 다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오전에 처리해야 할 관공서 일이 몇 가지 있었다. 주민센터(아직도 동사무소가 더 익숙한 세대다)에 가서 해외 체류신청을 하고, 우체국에 가서 친지들에게 일부 소모품들을 나눠주는 소포를 보내야 헸다. 싱글이어서 부모님 댁에 살 때는 이런 건 특별히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주민 등록이 부모님 댁으로 되어 있었으니까. 그런데, 한 가정을 이루어 살고.. 2022.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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