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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민42

2-18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도 허점은 있더라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결정을 하고, 한국에서 십 년간 살면서 닦아놓은 기반을 다 포기하고, (특별히 포기한 것이 대단한 것들은 아니다만) 모든 것을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야 하는 과정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엄청난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자각이 부족했다. 워낙 성격이 괴팍해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일상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 때문에, 평일의 일상 루틴과 주말의 일상 루틴이 거의 깨지지 않은 상태로 마지막 일주일까지 맞이했다. ​ 마지막 날까지 일상은 일상이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몇 가지 무리한 결정이 우리를 괴롭게 했다. 가장 큰 것이 집과 자동차였다.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을 조금 더 빨리 정리하고 호텔에서 며칠 생활하거나 아니면 조금 멀긴 해도 친척 집에서 며칠 묵을 수 있었으면 조금.. 2023. 3. 7.
D+181 일 얘기에 빠진 아내들, 아이 교육 얘기뿐인 아빠들 점심 식사를 마친 후의 회사 뒤뜰엔 남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담배를 물고 대화가 한창이다. 대화의 테이블엔 온갖 주제가 오른다. 정치 얘기, 부동산 얘기, 주식 얘기, 해외 축구 얘기, 커리어 얘기 등. 마치 대한민국은 다 자기가 이고 있는 듯, 온갖 비판과 비난을 번갈아가면서 쏟아낸다. 집안 얘기는 잘 꺼내지 않는다. 간간히 자식 교육 얘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그저 학원비가 비싸서 허리가 휘어진다는 정도? 그러다 십여분이 지나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썰물처럼 모두 사라지고 없다. 반면 초등학교와 유치원이 자리한 아파트의 코너 골목 옆 카페에는 30대 주부 몇 명이 옹기종기 앉아 온갖 대화가 오가고 있다. 주로 아이들 학업, 성적, 혹은 학원, 특별 활동 등의 이야기를 나눈다. 은근 신경전이 장난 아니.. 2023. 2. 2.
2-12 출국을 앞두고 아내 건강검진에서 이상 소견이 발견됐다 미국은 의료보험도 비싸고, 의료비도 비싼 나라다. 출국하기 전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워낙 악명이 높았기에, 미국 출국이 확정된 이후로는 아내와 나, 딸아이까지 필요한 건강검진을 열심히 받았다. 아내는 회사에서 매년 건강검진을 지원해 줘서 이를 예약해서 받았고, 나 같은 경우는 회사에서 2년에 한 번 건강검진을 하는데, 다행히 올해가 검진받는 해여서 재빠르게 검진을 신청했다. 평소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검진을 미루다 미루다 연말이 되어서나 받고는 했는데, 올해(2022년)는 해가 넘어가자마자 검진을 신청했다. 아이는 초등학교에서 의뢰한 소아과 검진으로 건강검진을 받고, 보다 중요한 치과와 안과를 별도로 검사를 진행했다. ​ 건강 검진은 언제 받아도 겁이 난다. 괜히 몸 어디에 이상이 있을 것만 같고, .. 2023. 1. 24.
D+165 딸아이의 미국 초등학교 첫 학기 결산 나나 아내는 20대부터 해외 생활 경험이 많았다. 아내는 20대 초반에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어학연수와 유학 생활을 했고, 나는 20대 후반에 미국에서 대학원 유학 생활을 했다. 그래서 10년을 한국에서 지냈어도 다시 미국에 가기로 했을 때, 두려움이 많지 않았다. 미국에 가면 무슨 일이 있을지 예측이 가능하고, 어떤 장애물이나 어려움을 겪을지 알기 때문에 마음에 각오를 다지기에도 좋았다. ​ 미국 유학 시절 태어난 딸아이는 달랐다. 미국에서 태어나 서부 끝에서 동부 끝까지 이주하는 엄청난 일들을 겪었음에도, 그 모든 일들은 고작 첫돌도 지나기 전의 일들이다. 돌이 막 지난 13개월 때 한국으로 들어온 뒤, 약 10년, 정확히는 9년 동안 한국에서 한국의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다. 당연히 미국에서의 생활은 .. 2023. 1. 19.
2-11 미국 가는 이삿짐, 소포 박스 여섯 개 10년 전 뉴저지에서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나와 아내가 최종적으로 싼 짐은 소포 박스 여섯 개였다.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다 보니 많지는 않았지만 침대니 서랍장이니 해서 짐이 꽤나 늘어났었고,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한 이상 모든 짐을 다 처분해야 했다.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를 이용해 정말 염가로 가지고 있던 가구나 전자제품들을 모두 처분했고, 꼭 가지고 가야만 하는 짐만 추리고 보니 비행기에 실을 수 있는 짐을 제외하고 가장 큰 소포 박스 여섯 개가 나왔다. 그렇게 육 년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올 때 내게 남은 것이 소포 박스 여섯 개였다. 10년 만에 다시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향하게 되자,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챙길지가 또 큰 고민거리가 되었다. 10년 전에는 갓난쟁이.. 2023. 1. 17.
D+159 우리 집에 초대합니다 누구든 새로운 장소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다. 도에서 도를 이동, 아니 시에서 시로 이동만 하더라도 쓰레기 분리배출에서부터 사소한 행정 복지 시스템, 아파트 관리 규정들이 미세하게 달라서 은근히 불편함을 야기하곤 한다. 이웃과의 거리감이 점차 멀어지는 한국 사회의 특성상 모르는 것들을 이웃에게 물어보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짧지 않은 시간 불편함을 감수하거나, 심할 때는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기도 한다. 한국 내에서 시에서 시, 도에서 도로 이동한다 할지라도 어려운 일이 많을 텐데, 나라에서 나라로 이주를 하는 입장에서 어려운 일들이 얼마나 많았으랴. 처음 이곳에 오고 나서 약 한 달 동안은 정말 잠도 잘 자지 못할 정도였다. 미국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어도 온 가족이 함께 삶의 터전을 바꾼다는 것이 쉬운.. 2023. 1. 11.
D+147 ‘미국에서 맞는 첫 크리스마스’의 악몽 (3) 결국 크리스마스이브 날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보낸 탓에, 온 가족은 감기에 걸리고 크리스마스 당일엔 아무것도 못하고 집에서 이불속에만 박혀 있게 되었다. 아이는 열이 38도에 기침을 계속했고, 아내나 나도 두통에 시달렸다. 도저히 무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아이는 크리스마스 예배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결국 가지 못했고, 집에서 푹 쉬기만 했다. 다행히 다음날 아내나 나는 조금 괜찮았는데, 아이는 아직 열이 계속 오르내렸다. 그래도 정신은 조금 차렸는지, 먹고 싶은 것도 조금 생기고 낮 시간 동안 제법 놀기도 해서 마음이 조금 놓인다. 아이가 돌을 막 지나 처음 병원에 입원했을 때, 갑자기 축 늘어지는 바람에 알아차리고 응급실에 갔다가 폐렴을 발견해 치료를 받았던 경험을 한 뒤로는, 아이가 쳐.. 2023. 1. 2.
D+131 미국 에너지 요금은 미쳤다 미국 동부에서도 추운 겨울이 계속되고 있다. 아, 물론 최근 한국 날씨를 보니까, 지금은 한국이 더 춥다. 온도만 보면 확실하다. 한국은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는 것에 반해 여긴 그저 영하 1~2도 수준이다. 이곳 사람들은 계속 아직 진짜 겨울은 시작도 안 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 하지만 안타깝게도 체감 온도는 여기가 더 추운 듯하다. 이유는 집이 춥기 때문이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기온이 우리나라 강원도와 더 비슷한 지역의 집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단열도 난방도 잘 갖춰져 있지 않다. 바닥 난방은 바라지도 않았지만, 온풍기 만으로는 정말 겨울을 나기가 어렵다. 기온이 영하를 오르내리면서 온풍기가 거의 하루 종일 틀어져 있는데, 그럼에도 집안 온도를 20도 이상으로 끌어올리.. 2022. 12. 17.
2-6 미국에서 살 집을 인터넷 쇼핑하다! 아내가 학교 입학 허가 서류를 받고 나자, 여러 방면으로 진짜 이주 준비가 시작되었다. 마침내 서류를 받았으니 미국 비자를 신청해야 했고, 아내의 학교도 완전히(?) 확정됐으니 우리가 살 집도 정해야 했다. 미국 비자 신청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주 준비를 위해 워낙 신경 쓸 것이 많기도 했고, 처음 아내가 유학원을 등록했을 때 비자 신청은 유학원에서 도와준다고 했어서 유학원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기로 했다. 비록 아내가 합격한 학교가 유학원에서 같이 서류를 작성했던 학교는 아니었지만, 유학원에서는 자신들과 함께 지원한 학교로 진학하지 않는다고 해도 비자 수속을 도와준다고 하니 한시름 놓았다. 내가 진짜 신경을 써야 했던 부분은 우리 가족이 머물게 될 터전을 찾는 작업이었다. 다른 이주 준비 관련 블로그나.. 2022. 12. 13.
D+128 거실을 울리는 서툰 우쿨렐레 소리 우리 딸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쳤는데, 미국에 와서는 다시 초등학교 4학년 1학기가 되었다. 만약 아이가 9월 전에 태어난 아이였으면 5학년이 되었겠지만, 9월에 태어나서 다행히도 4학년으로 들어갔다. 미국에 오자마자 신학기 시작. 한국에서 마음의 준비는 모두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모든 것이 갑작스럽고 모든 것이 낯설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나 아내 모두 올 한 학년은 아이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기로 했다. 그저 바라는 건 단 한 가지, 미국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이다. 아내는 자신의 학교 생활 시작으로 정신이 없었고, 나는 미국으로 물리적 이동을 하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에, 아이의 학교 생활에 대한 사전 정보를 충분히 얻지 못한 상태로 미국에.. 2022.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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