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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민42

D+55 한국에서 온 마지막 소포 우리 가족은 정말 단출하게 짐을 싸서 미국으로 건너왔다. 가구나 대형 가전은 모두 팔거나 버렸다. (초반 글에서 확인할 수 있겠지만) 추억의 물건들도 최소한으로 줄였다. (아이가 있으면 추억의 물건들이 참 많다) 세 식구의 옷가지, 일부 생필품, 소형 필수 가전들을 제외하면 특별하게 챙긴 물건들이 없다. 십 년 전 미국에서 올 때 그랬던 것처럼 다시 미국에 갈 때도 단출했다. 처음 준비할 때 가기를 소망했던 지역은 수도 없이 말했듯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 지역이었다. 내가 유학했던 곳이기도 했고, 아내와 나의 직종의 산업이 발달한 지역이다. 또 겨울과 여름의 온도차가 크지 않은 곳이라 특별히 두꺼운 겨울 옷이 필요 없는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곳에 가게 되면 겨울 옷들은 모두 버려버리고(!) 갈 수 있.. 2022. 11. 13.
D+33 그래도 주말엔 유재석 님이지! 어렸을 적 어학연수를 할 때, 한국 콘텐츠는 영어 공부를 하는 학생들의 공공의 적이었다. 고작 1년이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게 되기 위해, 한국어를 듣고 말할 기회를 줄이는 건 어학연수생에게는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아내는 이십 대 초반에 뉴질랜드에서 어학연수를 했고, 동양인을 찾아볼 수 없는 오지로 가서 주중에는 한국 노래조차 듣지 않으면서 열심히 영어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주말이 되면 봉인했던 한국 노래가 들어간 MP3 플레이어를 틀어놓고 몰래 눈물 지었다던 추억을 지금도 꺼내곤 한다. 나는 조금 뒤늦은 이십 대 후반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어학연수를 시작해, 자연스럽게 석사 유학을 이어갔다. 나도 어학연수 때는 한국 콘텐츠를 보지 않으려 애쓰고, 외국인들만 만나서 .. 2022. 11. 8.
D+31 한국 아파트 관리비가 그립다 한국에서 출국한 것이 지난 8월 1일, 내가 살고 있는 곳에는 2일 아침에 도착했으니까, 이곳에 온지도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정착을 잘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신경 쓸 것이 참 많았다. 각종 생활 용품 구매, 은행 계좌 개설, 각종 생활 서비스 신청, 거기에 자동차 구매까지, 수많은 일들을 쉴 새 없이 처리해 왔다. 작은 이슈들은 이래저래 있었지만, 그래도 감사하게도 짧은 시간 동안 잘 정착해서 새로운 일상처럼 살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새로운 한 달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달이 다가오면서 이제 여러 가지 신청했던 각종 서비스 (보통 유틸리티라 부른다)에 대한 비용 청구가 되기 시작했다. 인터넷, 전기, 가스, 휴대폰에 월세까지. 휴대폰의 경우는 날짜가 조금 다르지만, 나머지는 모두 매월 1일이.. 2022. 11. 8.
D+29 아이의 미국 초등학교 로망2: 학교 버스 어느덧 아이 학교가 개학한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워낙 처음부터 잘 적응하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려 지낸 터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런데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아이의 학교 버스 스케줄이 확정되지 않은 점이었다. 노란색 클래식한 모양의 학교 버스. 미국 영화에서 미국 학교의 학교 버스가 등장하면 뭔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특유의 느낌이 있다. (물론, 배트맨 다크나이트에서 나오는 장면은 그렇지 않다) 커다란 나무가 우거진 공원 사이에 고즈넉하게 난 길에서 지나가는 학교 버스, 그리고 거기에서 내리는 아이. 내가 상상했던 미국에 오게 되었을 때 상상한 모습 중에 하나다. 아이도 그랬다. 그 노란색 학교 버스를 그렇게 타고 싶어 했다. 심지어 한국에서 학원 버스조차 타.. 2022. 11. 4.
해는 뜬다! ‘자기야’ ‘응?’ ‘나, 붙었나 봐’ ‘응?’ 저녁 8시, 집안일을 모두 마친 뒤, 아내는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며 휴대폰의 이메일을 정리하고 있었고, 난 그 옆의 실내 자전거에 올라 운동을 하고 있었다. ‘ㅇㅇ대학의 박사과정 담당자인데 축하한다는데?’ 아내가 캘리포니아의 꿈꾸던 학교에서 불합격 소식을 들은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나는 7년 근속으로 받은 리프레시 휴가로 집에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아이와 함께 시간도 보내고 아내가 재택근무에 집중할 수 있게 하기 쓴 휴가였다. 아이가 방학 동안 집에만 있다 보니 아내의 업무가 많이 어려워진 상황이었는데, 학기가 시작되면 그나마 학교 가 있는 동안은 일이 수월해질 수 있을 것 같아, 방학 동안에 아내.. 2022. 10. 28.
D+14 늘 그렇듯 길을 잃은 그녀 (이 내용은 이 글​과 사건을 공유합니다) 아내는 중증 길치, 방향치다. 내가 불안하다 싶으면, (요거 길 잃고 헤맬 것 같은데… 싶으면) 어김없이 길을 잃고 헤매며 전화해 성질을 낸다. 오늘은 아내가 인터내셔널 스튜던트 오리엔테이션이 있어서 학교에 가는 날이다. 아내는 아직 정식 수업이 아닌 만큼, 호기롭게 홀로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겠노라고 선언했다. 중간에 갈아타야 하는 데다 시간도 길어서 과연 잘 다녀올 수 있을지 걱정됐는데, 아무래도 늦겠다며, 가는 길엔 라이드를 해주고 오는 길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점심 즈음 아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아이와 집에 돌아와 아이 학교 웹 등록과 블로그/브런치 글 등 이것저것 정리하고 있는데 아내가 드디어 버스 타기를 도전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올 것이.. 2022. 10. 25.
D+9(2) 로드트립이 준 교훈 (앞 글에서 계속) 요새는 한국 고속도로에도 암행 순찰차가 생겨서 많이 낯설지는 않지만, 내가 유학을 하던 시절에는 암행 순찰차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특히나 장거리 운행을 하다 보면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하기 위해 속도위반을 많이 하는데, 한국처럼 속도위반을 카메라로 잡는 것도 아니고 하니, 조금 맘 놓고 위반하기도 했다. 옳지는 않지만, 그 시절엔 그랬다. 카메라 앞에서만 속도 줄이고 그러니까. 그러다가 무서운 미국 경찰한테 잡히면 (풀 오버라고 한다) 매우 무서운 건 안 비밀이다. 미국에 온 지 열흘이 안 되어 경찰에게 풀오버 되다니… 갓길에 차를 대고 가만히 있는데 손 발이 부들부들 떨렸다. 미국에서 경찰이 차를 세우면 절대 꿈쩍도 하면 안 된다. 핸들을 잡고 있는 상태로 있다가 면허증을 보여달라고 .. 2022. 10. 22.
희망이 산산조각 나다 사람은 자기 스스로 만든 암시에 쉽게 잘 속아 넘어간다. 계속 스스로 어떠한 믿음이 있으면 정말 그렇게 된다고 믿는다. 아니, 그렇게 됐다고 믿는다. 나와 아내가 그랬다. 오랫동안 고생해서 유학을 준비해서인지, 이제야 겨우 학교 지원을 모두 마친 상태였지만 이제 곧 합격자 발표를 줄줄이 받을 거란 기대가 머릿속을 지배했다. 나는 나대로 이전 글에서 썼듯, 남몰래 회사 미국 지사 설립, 혹은 크리에이터 활동 등을 하겠다는 계획을 새운 뒤, 벌써 그렇게 되었다고 나 스스로 믿은 듯했다. 아직 사장님께 말씀 한 번 드린 적이 없는데, 혼자서는 벌써 그렇게 하기로 한 사람인 듯 생각이 들었다. 물론 머리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도 기분만은 그랬다. ​ 새해가 밝고 이제는 본격적인 기다림의 시간이 되었다. 새로운.. 2022. 10. 21.
D+9(1) 갑작스레 떠난 원데이 로드트립 일주일 전 차량구매와 운전 면허, 그리고 영사관 면허증 번역 사이에서의 상관 관계를 언급한 바 있었다. 어찌저찌 정보를 통해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 즈음해서 영사관 예약이 오픈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시름 놓고는 시간에 맞추어 예약 사이트에 들어갔지만, 오픈된 예약 날짜는 지금으로부터 3주 후이고, 그 이야기는 면허를 받는 일정이 한없이 미뤄져 내가 차를 구할 수 있게 되는 시기는 빨라야 9월말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 완전 좌절하고 있는데, 중간중간 들어가면 예약 취소건이 있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정말 틈만 나면 영사민원 홈페이지를 들락날락… 휴대폰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마침내! 이번주 수요일에 영사관 예약 자리가 난 것을 찾아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 2022. 10. 21.
희망 회로 2 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장래 희망을 정한 후로 난 20년이 넘게 영상과 관련된 공부와 일을 하면서 살았다. 대학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방송국에서 조연출을 했고, 유학을 가선 영화과를 다니며 애니과 사람들과 단편 애니 프로듀싱을 했다. 한국에 돌아와선 누구나 다 아는 그 애니메이션 만드는 회사를 다니며 애니메이션을 기획 제작하는 프로듀서로 8년을 다녔다. 미국행을 결정하면서 아내가 공부하는 동안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을 해 봤는데, 앞의 글에서처럼 그런 작전(?)이 먹히지 않으면, 유튜브를 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사실 유튜브라는 매체가 내게 잘 어울리는 매체는 아니다. 학교를 다니던 시절엔 단편 영화만을 만들었다. 짜인 각본에 의한 연기를 찍고, 이를 기민한 편집으로 잘 만들.. 2022.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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