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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에 산다!/주부 남편 아빠 미국 정착 일기

D+55 한국에서 온 마지막 소포

by jcob why 2022.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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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정말 단출하게 짐을 싸서 미국으로 건너왔다. 가구나 대형 가전은 모두 팔거나 버렸다. (초반 글에서 확인할 수 있겠지만) 추억의 물건들도 최소한으로 줄였다. (아이가 있으면 추억의 물건들이 참 많다) 세 식구의 옷가지, 일부 생필품, 소형 필수 가전들을 제외하면 특별하게 챙긴 물건들이 없다. 십 년 전 미국에서 올 때 그랬던 것처럼 다시 미국에 갈 때도 단출했다.

 

처음 준비할 때 가기를 소망했던 지역은 수도 없이 말했듯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 지역이었다. 내가 유학했던 곳이기도 했고, 아내와 나의 직종의 산업이 발달한 지역이다. 또 겨울과 여름의 온도차가 크지 않은 곳이라 특별히 두꺼운 겨울 옷이 필요 없는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곳에 가게 되면 겨울 옷들은 모두 버려버리고(!) 갈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우리가 가게 된 곳은 미국의 북동부에 위치한 지역이다. 사계절이 매우 뚜렷하고 한국 강원도의 날씨와 매우 유사한 곳이다. 결국 우리는 한국에서 입던 모든 겨울 옷들을 짊어지고 미국으로 향해야 했다.

 

여름에 이주를 하니 겨울 옷이 당장 필요한 건 아니어서 두꺼운 옷들은 모두 짐으로 부치기로 했다. 다양한 짐을 부칠 방법을 찾아봤지만, 가장 안전하고 좋은 방법은 결국 우체국 국제 소포였다. 다양한 운송 업체들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당시 (얼마 안 지났지만 벌써 ‘당시’다) 코로나 시국이 조금씩 누그러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운송 대란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래서 운송 요금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비슷한 서비스의 우체국 국제 소포가 가장 저렴하면서도 안정적으로 운송이 가능했다. 보통 이렇게 한국에서 미국으로 짐을 부치면 배편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두세 달이 소요되는데, 요새 운송이 워낙 밀려 있어서 네 달까지도 걸린다고 한다.

 

네 달. 짐을 부칠 당시에는 6월이었으니까 진짜 네 달이 걸린다고 해도 10월이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롱 패딩, 내복 같은 건 11월은 돼야 필요할 테니까. 그래서 박스가 싸지는 대로 두 박스 씩 세 번에 나누어 미국의 계약한 집으로 소포를 부쳤다. 두꺼운 겨울 옷들과 한국어 책들을 가장 먼저 보냈고, 있으나 마나 한 온갖 잡동사니들을 가장 마지막으로 해서 총 여섯 개의 박스를 6월부터 7월 초까지 미국으로 보냈다.

 

그 사이, 우리 가족은 (앞의 글들에서처럼)  한국의 집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이주해 잘 정착했다. 미국 북동부의 더운 8월을 보냈고, 9월도 제법 더웠다. 한국의 더운 여름 같진 않았지만, 30도에 육박하는 더위에 비도 제법 자주 와서 후덥지근한 날도 많았다. 불과 지난주까지는.

 

갑자기 지난 수요일부터 온도가 뚝 떨어졌다. 바로 전날만 하더라도 밤에 너무 더워서 선풍기를 켜거나 창문을 열어 놓아야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런데 밤 사이에 비가 오더니 갑자기 그다음 날 아침에 한 자릿수 온도로 뚝 떨어졌다. 문제는, 아직 긴팔, 두꺼운 옷이 싸인 박스가 도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상하게도 총 여섯 개의 박스를 6월 중순, 6월 말, 7월 초, 이렇게 세 번에 나누어 보냈는데, 정작 소포는 역순으로 7월 초에 보낸 소포가 9월 초에 가장 먼저 왔다. 그 안에는 필요는 하지만 그 중요성이 매우 낮은 온갖 잡동사니들이 들어 있었다. 6월 말 보낸 3, 4번 박스도 몇 주 후 도착했다. 거기엔 책들과 몇몇 문구류들이 들어 있었다. 가을 겨울 옷들이 들어있는 박스는 마지막까지 오지 않았다. 초조해졌다.

 

한국에서 국제 소포를 보낼 때, 직원분이 여러 특이사항을 알려 주셨는데, 그중에 하나가 구체적인 배송 상황을 알기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또 선편(배편)으로 소포를 보내는 경우 분실되는 경우가 제법 있다고 했다. 이 경우에는 특정 금액까지는 보상이 된다고 한다. 또 임의로 반송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반송되면 어떻게 할 건지 물었다. 뭘 어떡해? 한국에 소포를 받을 곳이 전혀 없는데. 폐기해 달라고 했었다.

 

배송 상황은 매우 대략적이었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부산에서 배에 실려 미국을 향하고 있다는 것 정도? 그리고 그렇게 한두 달이 지난 것이다. 위의 상황을 비추어 봤을 때, 내가 소포를 아직까지 받지 못하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떠올랐다. 배편으로 오다가 파손되어 폐기되었거나, 임의로 반송하려 했으나 폐기 요청으로 폐기되었거나. 또는 분실되었을 수도 있다. 그럼 어쩌지? 날씨는 벌써 이렇게 추워졌는데. 긴팔 옷을 다 사야 하나?

 

계속 소포를 기다리면서 초조했던 것이 한 2~3주 되었는데, 이번 주 날씨까지 추워지자 더 불안해졌다.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긴팔 옷은 각자 한벌씩 가지고 있던 후디 집업 정도? 더 많이 늦게 오면 어떡하지? 하고 있는데, 지난 목요일 새벽, 마침내 배송 정보가 바뀌었다! 마침내 두꺼운 옷들이 들어있는 1, 2번 박스가 뉴저지 항에 도착한 것이다. 지난 네 개의 박스를 생각해 봤을 때, 미국 항구에 도착하고 나면 불과 하루면 집에 배송된다. 그래도 주말이 지나기 전에 받을 수 있겠단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정말 금요일이 되자 박스가 도착했다. 그런데, 박스가 한 개뿐이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두 개의 박스 중에서도 가장 나갈 일이 없는 내 옷이 잔뜩 든 박스가 먼저 도착했다. 미국 우체국이 주말에 배송 할리는 없을 테고, 나머지 한 박스는 월요일에나 오겠구나 하면서 짐을 정리했다.

 

그리고 오늘, 교회에 가려고 집을 나서는데, 아파트 입구에 한국 우체국 박스가 떡 하니 놓여 있다. 뭐야? 일요일에도 배송을 하는 거야? 어쨌든. 마침내 한국에서 가져오려 했던 모든 짐들이 내가 사는 이곳에 도착했다. 롱 패딩, 코트, 내복까지 가을 겨울 옷들이 모두 도착했다. 마침 아침저녁으로 꽤 쌀쌀해서, 내복도 빨리 왔으면 하고 바랐는데 다행이었다. 

 

한국에서 부친 짐들이 도착하자, 이제야 모든 이주, 정착 프로세스가 마무리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 도착한 지 두 달여만이다. 이젠 한국에서 오기를 바라는 짐들도 없고, 바랄 것도 없다. 여기서 생기는 일들은 여기서 해결해야만 한다. 조금은 겁도 난다. 다시 망망대해에 홀로 우리 가족만 던져진 느낌이다.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 또 잘 헤쳐나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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