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학교 버스를 타는 시간이면 오십 대 중반 정도 돼 보이시는 스쿨 가드가 나오셔서 아이들의 학교 버스 승하차와 횡단보도 인전을 도와주신다. 우리 아이가 버스를 타는 곳은 아파트 오피스 앞인데, 학군 당국에서 고용한 소셜 워커로 여겨지는 스쿨 가드 분이 아이들의 승하차를 안전하게 도와주시니 만족감이 매우 높았다.
우리 정류장에는 두 대의 학교 버스가 서는데, 하나는 일반 배정 학교로 향하는 학교 버스 한 대와, ESL 클래스가 운영되는 조금 더 큰 학교의 학교 버스, 이렇게 두 대의 다른 버스가 선다. 원래라면 첫 번째 버스를 타고 그 학교로 모두 통학해야 하지만, 외국인 학생의 경우는 영어 수업에 익숙해질 때까지 ESL 수업이 진행되는 학교로 재배정되어 학교를 다니게 된다. 아무래도 오분 정도 간격으로 두 대의 학교 버스가 서 많은 아이들이 승하차를 하다 보니, 스쿨 가드까지 배정되어 아이들의 안전을 돕는 것으로 보였다.
우리 아이는 개학 둘째 주부터 학교 버스를 타서, 스쿨 가드 분도 그날 처음 뵈었다. 워낙 친절하시기도 하고, 아이들을 예뻐하셔서 정말 봉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신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또 이런저런 지역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해 주시고, 학부모들의 이야기도 잘 들어주시는 편이라 참 좋은 분이라 생각했다.
다만, 대화하는 것을 엄청 좋아하셨는데, 외국인 학생들과 그 부모들이 많은 시간이어서 대화에 한계가 좀 있어 보였다. 우리 아파트엔 동양 사람들뿐 아니라, 유럽에서 온 외국인들도 제법 있었는데, 그분들도 영어가 서투신 분들이 많았다. (직접 상황을 눈으로 보면 진짜 어색하다. 동양인들이 영어를 못하면 뭐 그러려니 하는데, 서양인 모습이어서 막 영어로 말해도 하나도 못 알아듣는 스런 상황, 우리에겐 모습이 어색하다) 그러다 보니 스쿨 가드분 입장에선 대화가 뚝뚝 끊기기 일쑤였다.
그런데 내가 나온 후론, 나만 나오면 붙잡고 이런저런 말씀을 참 많이 하신다. 내 영어가 듣기엔 제법 그럴듯해서 대화가 잘 통한다고 생각하신 듯하다. (실제론 그분이 하시는 말씀의 반 정도만 알아듣는 듯하다) 물론 이건 진짜로 영어를 잘하는 아내가 함께 나오면 아내 쪽으로 대화가 확 쏠려 버린다.
오늘 오후에는 한 아이의 부모님 때문에 스트레스받으신 이야기를 꺼내셨다. 한 아이가 아침에 버스가 오기 삼십 분~한 시간 전부터 혼자 나와서 버스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십분 정도라면 모르지만 삼십 분이나 아이를 혼자 두면 자기를 베이비시터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냐면서 불쾌감을 드러내셨다. 이야기를 듣는데 우리 아이와 같이 ESL 클래스를 듣는 아이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다. 동유럽 한 국가에서 온 가정인데, 부모가 모두 일하러 새벽같이 나가기 때문에 늘 혼자 학교에 가는 아이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스쿨 가드분이 오해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은 초등학생이 홀로 돌아다니는 것이 가능한 나라가 아니다. 환경적으로도 그렇지만 심리적으로는 더 그렇다. 법적으로는 잘 모르겠는데, (법으로 안된다고 알고 있었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니라는 말도 있다) 하여튼 아이가 혼자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런 문화는 나라마다 다르지 않은가? 어떤 문화권에서는 철저하게 아이들의 생활을 부모님들이 책임지기도 하고, 어떤 문화권에서는 아이들에게 자립심을 키워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하니까.
그래서 스쿨 가드분께 다른 나라에서 온 학부모들은 조금 문화가 다를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각자 온 나라마다 문화가 조금씩 다를 수도 있을 거야. 어떤 나라는 아이들이 혼자서 학교에 가기도 하거든. 우리 가족이 그러지는 않았지만, 내가 온 한국에서도 많은 집 아이들이 혼자 학교에 가. 심지어 학교 버스도 없이 말이야.’
(진심으로 놀라서) ’ 정말? 그게 안전해? 괜찮아?’
안전? 한국의 등하교가 안전하다고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안전하지 않아서 우리 집은 한국에서도 늘 학교에 데려다줬으니까. 운전을 못했던 아내는 아이를 도보로 학교까지 늘 데려다주고는 부랴부랴 근처 카페에 가서 원격 미팅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혼자 있던 아이에게 해코지를 하려는 무슨 사고가 있었다는 뉴스도 들리고, ‘민식이 법’이라는 법까지 개정될 정도로 아이들의 등하굣길 교통은 안전하지 않다. 그나마도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비해서는 좋아졌다는 것에 위안을 삼았었다.
이곳에 온 후 아이의 등하굣길은 언제나 안심이다. 학교버스 운전사들은 굉장히 까다로운 시험과 심사를 통해서 선발된다. 우리 아이 버스 타는 곳과 같이 많은 학생들이 승하차를 하는 곳에는 스쿨 가드가 배치된다. 학교 버스가 멈추면 양방향 도로의 모든 차량이 임시 정차한다. 아침 일곱 시에서 아롭 시 사이, 오후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는 초중고등학교의 등하교 시간으로 학교와 학군 그리고 지역이 긴장하고 아이들의 등하굣길이 안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과연 한국에서의 등하굣길은 안전해서 이때까지 큰일이 없었던 걸까? 운이 좋아서 우리 아이를 비껴갔던 것은 아니었을까? 학교와 학부모, 지역이 모두 함께 힘써 아이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문화를 보면서, 한국에서도 그런 문화가 잘 정착될 수 있었으면 한다.
Photo by Marjorie Bertrand on Unsplash
'나는 미국에 산다! > 주부 남편 아빠 미국 정착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D+57 페런하이트와 마일, 그리고 파운드 (1) | 2022.11.13 |
---|---|
D+55 한국에서 온 마지막 소포 (0) | 2022.11.13 |
D+46 도시락을 잊고 간 딸아이의 점심식사 (0) | 2022.11.12 |
D+44 미국 의료보험은 비싼 게 끝이 아니었다 (0) | 2022.11.11 |
D+42 미국에서 처음 맞는 아이의 생일 (1) | 2022.11.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