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아악!! 어떡해~!’
‘왜, 왜, 왜?’
‘졸업 증명서, 성적 증명서 제출일이 이번주 금요일 까지잖아!’
아내가 학교 지원할 때 성적 증명서와 졸업 증명서를 스캔본으로 제출했었는데, 합격통지 때 원본 서류를 모월 모일까지 제출해 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그 시기가 워낙 이주 준비로 정신이 없을 때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오늘이 수요일, 금요일까지 도착할 방법이 무엇일까? 국제 특송 업체를 검색해 보니, 이틀 안에 발송이 가능하다는 말에 일단 안심했다. 미국 업체 F사는 미국으로 특송을 보낼 때 빠르고, 유럽 업체인 D사는 구대륙(유럽, 아시아) 쪽이 빠르다고 한다.
증명서들이 있으면 바로 보내면 될 텐데, 서류가 없으니 발급부터 받아야 한다. 그런데’ 오피셜’ 영문 성적 증명서와 졸업 증명서는 온라인 발급이 불가능하다. ‘오피셜’은 원본 서류를 학교 봉투에 담아 도장을 찍어서 주는데, 그러려면 우편으로 받거나 학교를 반드시 방문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이틀, 그러므로 반드시 오늘 서류를 손에 넣어 직접 발송해야 한다! 한숨부터 나왔다. 결혼 후 수도권 외곽으로 이사 온 우리에게 아내의 대학교와 대학원(두 학교가 다른 학교)은 너무 멀다. 그래도 선택권이 없다. 오늘 안에 모두 다 받아서 발송해야지.
온 집안 007 작전이 아침 일찍부터 시작됐다. 아이를 학교에 보냈다가 하교시간까지 데리고 올 자신이 없어서 오늘 하루 학교는 빠지기로 했다. 나는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보며 동선을 최단거리로 짰다. 운전만 4시간 여가 소요되는 긴 이동거리다. 곳곳이 상습 정체구간이기도 하다. 대학원에 가서 서류를 떼고, 다음엔 대학교에 방문에 서류를 뗀다. 그다음에는 대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F사 지점으로 이동해 받은 서류를 모두 미국 학교에 보내는 일정이다. 계획대로만 되면 서류를 보내고 점심을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조급해지면 엄청 덤벙대는 나,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아침에 학교 사무실 오픈 시간을 고려해 8시가 약간 넘은 시간에 집을 나섰다. 대학원까지는 약 1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여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출근시간이어서 길이 막히는 거다. 대학원엔 빨리 도착해야 했다. 대학원에서 대학교까지의 거리가 워낙 멀기 때문에 대학원에서 빨리 출발해야 오전 중에 서류 발급을 모두 마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음은 많이 초조했지만 침착하려고 애쓰면서 학교로 향했다. 막히는 시간이긴 했지만, 많이 늦지는 않았다. 9시를 10분 정도 넘긴 시간? 무사히 학교에 도착했다.
아내가 서류를 떼는 동안 나와 아이는 차에서 아내를 기다렸다. 아이는 벌써 지친 듯했다. 이를 어쩌나? 이제 시작인데… 이렇게 저렇게 아이를 달래며 기다리니 무사히 아내가 서류를 발급받아 돌아왔다. 학교에서 서류를 발송해 주기는 하지만 급송이 아니어서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도착은 어렵다고 했단다. 아내는 영문 졸업 증명서와 성적 증명서를 5부씩이나 발급을 받았다. 언제 또 필요할지 모른다면서. 철두철미한 아내의 성격이다. 이번에도 적게 발급받아놔서 이 사달이 났다면서, 나에게도 항상 여러 부의 서류를 발급받아 놓으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아 예, 알겠습니다요.
이제 대학교로 향한다. 바로 고속화도로를 탔는데 아뿔싸, 아까보다 더 심한 정체가 기다리고 있다. 시내를 향하는 고속화도로 위 차들은 전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다. 1시간 안쪽으로 걸릴 거라던 나의 약속은 물 건너가버렸다. 거의 두 시간이 다 되어서야 학교에 도착했다. 아내와 아이, 나까지 거의 모두가 지쳤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다. 이 서류 발급/발송 작전의 성공만이 이 지친 마음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내는 학부 서류까지 잘 발급받았다. 이제 F사 지점에 가서 발송만 하면 된다! 가장 가까운 F사 지점은 명동에 있었다. 거의 십수 년만의 명동 방문이었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없다. 그저 F사의 간판만 찾을 뿐이다. 마침내 F사 지점을 찾아 들어가려 하는데, 문이 잠겨 있다! 밖에 걸린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보니, 점심시간이어서 1시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접수를 받는다고 한다. 빨리 모든 것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아쉽게도 성공을 조금 미뤄야 했다.
아이와 아내를 데리고 근처 분식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마냥 기다려 봐야 의미도 없거니와, 아이가 너무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뭐라도 먹이면 정신이라도 차리겠지 하는 맘에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떡볶이를 먹였다. 그래도 기운이 좀 나는 모양이다. 밥을 먹고 다시 사무실에 갔더니, 다행히 직원분이 계셨다. 특송 전용 봉투를 받아서 그 안에 보내야 하는 서류를 모두 넣고 가장 빠른(가장 비싼) 발송 서비스로 서류를 보내는 데 성공했다!
‘이거, 다음 주 월요일에 도착할 예정이라는데요?’
뭐? 왜? 이번주 금요일이 미국의 공휴일이라고 한다. (무슨 공휴일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공휴일도 아니었다) 이럴 수가… 이렇게 허무한 일이 있나. 아침 8시에 집을 나서서 오후 2시가 다 된 시간까지 이 고생을 했는데, 결국 받아 든 결과가 다음 주 월요일 도착이라니. 이보다 더 허탈할 수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걱정 반 허무함 반으로 가득 찬 아내는 학교에 메일을 보냈다. 서류 발송을 했는데, 금요일이 공휴일이라는 이유로 서류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고 양해를 구하는 메일 말이다. 그날 저녁 학교에서는 괜찮다는 답장이 왔다. 충격적인 내용의 이유와 함께.
‘넌 이미 전자서류로 다 발송했었기 때문에 굳이 다시 ‘원본’을 보낼 필요는 없어. 이메일에 그렇게 쓰여 있었던 건 아예 내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서야.’
우리 세 식구 다 같이 뭐 한 거지? 정신없이 서울 방방곡곡을 헤맸건만…
=쿠키=
우리가 보낸 서류는 놀랍게도 공휴일이라던 금요일에 학교에 도착했다. 하지만 담당자가 메일에 써 놓은 주소에 사무실 넘버가 빠져 있어서 반송되었고, 주소 정정 과정을 거쳐 일주일 더 늦게 도착하고 말았다. 이 무슨 환장 파티인가?
Photo by Fasyah Halim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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