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에게 하나 있는 딸은, 내가 미국에서 유학을 하던 시절 태어났다. 국적에 있어서 속지주의를 택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모두 국적을 부여한다. 그래서 우리 딸은 이중국적자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원칙적으로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지만, 이렇게 예외적으로 속지주의를 택하는 나라에서 태어난 자국민의 경우에는 22세가 되기 전 한국에서는 미국 국적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해야지만 복수 국적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어쨌거나 우리 딸은 미국인이다.
미국인 딸과 함께 미국에 가는 과정을 준비하고 있는 입장에서, 아이가 미국인인 게 얼마나 편하겠냐 싶겠지만, 나에게 딸이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마냥 좋은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여러 가지 실수나 걱정을 불러일으켰다. 여러 준비 업무를 진행하면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 블로그나 유튜브, 그리고 다양한 커뮤니티 자료를 통해 사례와 준비할 것들을 찾아보곤 했는데, '딸이 시민권자인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미국 유학’을 가는데, 자녀가 미국 국적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인 부모의 아이가 미국 국적을 가지게 되는 경우는 거의 대부분 유학생 시절 현지에서 출산을 했기 때문인데, 이미 유학을 했는데 또다시 유학을 가는 경우는 잘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여러 정보를 통해 유학생 부부나 가정의 이주 사례를 보며 준비를 하려고 해도 아이가 미국 국적을 가졌을 때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러면 아이가 미국 국적을 가지면 갈 때 편하고 좋은 거지 뭐가 실수를 유발하느냐,라고 생각할 수 있다. 대부분은 사소한 것들이고 지금 생각해 보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다. 단지 우리가 워낙 큰 결정으로 한국을 다 정리하고 미국으로 이주하는 과정을 겪는 것이다 보니, 작은 불편이나 실수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낼 수도 있단 두려움에 떨게 된다.
아이는 비자를 받지 않아도 된다. 당연하다. 미국 시민이니 미국을 들어갈 때 미국 여권 들고 잘 들어가면 된다. 그런데 나와 아내는 미국의 비자를 받아야 한다. 보통은 비자를 받으려면 미 대사관에 방문해서 비자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우리가 비자 인터뷰를 하는 동안 아이가 있을 곳이 없었다. 그럼 아이는 대사관에 함께 갈 수 있는가, 이런 문제가 머리를 아프게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성년 아이는 대사관 업무 대상자가 아니더라도 그 부모의 대사관 업무를 위해 함께 동행할 수 있다. 만 16세의 아이까지는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 누구 하나 시원하게 된다 답해 주는 곳이 없었다. 일단 유학원에서는 부정적이었다. 안 될 거라는 것. 아니 그럼 10살짜리 아이를 어디에 맡기고 인터뷰를 보란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결국 아내는 대사관에 직접 전화해서 문의했고, 결과적으로 위의 대답을 듣고 안심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심히 긴장했던 에피소드다.
두 번째로는 바로 지난주에 언급했던 비행기 티켓 문제다.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고 나서야 아이의 미국 여권에는 미들네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국제선 비행기 티켓의 경우는 다른 어떤 정보보다 이름이 중요하다. 특히 이름의 스펠링이 다르거나 할 경우, 심하면 해당 비행기를 탑승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미국에서 아이의 출생신고를 할 때 엄마의 성을 아이의 미들네임으로 넣었는데, 미국 여권으로 해외를 가는 경우는 잘 없다 보니 잘 잊고는 한다. 사소한 실수 하나 때문에 미국에 가지 못하게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나의 머릿속을 지배해 버렸다. 수많은 커뮤니티 글에는 해당 실수에 대한 비극적인 결말을 수도 없이 서술하고 있었다. 그런 커뮤니티 글이나 보면 머리카락을 쥐어짜고 있던 나를 한심하게 보던 아내는, 단박에 비행사에 전화해 문제가 있는지 확인한다. 담당 직원이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 한심하게 바라보는 아내의 얼굴을 보며 멋쩍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이가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점이 다소 편리함이 있는 부분도 있다. 미국 안에서의 행정 처리를 위해서 한국인이었다면 굉장히 많은 서류를 준비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미국 내에서 발행한 출생증명서만 제출하면 끝이었다. 다행히 오래전에 여권도 계속 갱신해 두어서 서류 부분에서 불편한 점은 많지 않았다.
하나둘씩 일이 진척되면서 사소한 것 하나 긴장되고 걱정되는 일이 너무 많다. 마음이 급하고 잘못될까 전전긍긍하는 일이 많다 보니, 시선이 좁아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쉽게 찾지 못하는 막다른 길에 접어들 때가 너무나도 많았다. 분명 많은 경우,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아이가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면 편리하다고 느껴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너무 눈앞의 문제와 방법만을 찾다 보니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다른 것만 불편해하게 된다. 생각해 보면 무엇이 하나 잘못된다고 지구가 멸망하는 것도 아니요, 누가 다치거나 위험에 처하는 것도 아니다. 여유를 되찾아야만 했다.
오랫동안 걱정했던 두 가지 문제였다. 그런데 사실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비자 인터뷰 때 아이를 데리고 갈 것인가, 비행기 티켓에 빼먹은 미들네임 괜찮을 것인가. 전화해서 확인해 보면 되는 문제였고, 모두 문제없었다.
그렇게 조금 또 준비가 되어간다.
Photo by Luke Littlefield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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