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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에 산다!/주부 남편 아빠 미국 정착 일기

D-1 이사 나와 호텔로

by jcob why 2022.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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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더워 죽는 줄 알았다. 어제 정도의 열대야라면 당연히 에어컨을 틀고 잤을 텐데, 안타깝게도 에어컨은 없다. 침대 프레임도 빼 버려 매트리스만 깔고 잤다. 새벽 여섯 시가 되자 밝은 빛이 창을 통해 들어온다. 평소라면 커튼이나 베란다에 널은 빨래들이 적당히 빛을 가려줬겠지만 침대가 없어 시선은 더 낮아졌는데 아무것도 빛을 가려주지 못한다. 딸아이는 새벽빛에 잠을 깨서 방 안이 울린다며 계속 이런저런 소리를 내 본다.

밤새 뒤척이던 나와 아내는 아이의 소리에 잠이 완전히 달아나 버린다. 결국 일곱 시부터 남은 쓰레기와 짐을 정리한다. 결국 장장 두 달에 거친 이주 준비와 홀로 이사 작전의 대장정이 마무리되는 날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짐의 무게를 확인하고, 가방 싸는 것도 끝났다. 어제까지 거의 근 한 달 동안 쓰레기를 그렇게 버렸는데 또 쓰레기장을 네 번이나 더 다녀왔다.

아홉 시. 콜밴은 열두 시에 온다고 해서 아침에 커피를 마시러 마실을 나왔다. 에어컨이 없는 집에서 그렇게 일을 했더니 너무 더워서 커피를 거의 1L 마셨다. 에어컨이 나와서 너무 좋았다. 단 하루인데도 에어컨 없는 집에 살았더니 약간 집착하게 된다.

카페에서 아마존 메시지를 확인했는데 벌써 집에 배송이 온 물건이 있단다! 이런. 우린 아직 여기 대한민국에 있는데! 자세히 보니 아마존 박스가 있고 거기에 비번이 있어서 비번을 넣으면 꺼내갈 수 있단다. 오. 신박하다. 그런데 문제는 부피가 다소 큰 청소기와 커피 머신이 집 현관 앞에 있단다. 이런. 아까는 심장이 벌렁벌렁 했는데 지금은 반 포기 상태다.

정리 마무리를 위해 집에 돌아와 보니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서 이케아 배달 주문에 도전했다. 다른 건 다 됐는데, 결제가 안된다. 이유인즉슨 결제 주소를 한국 주소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으윽. 만약 오늘 결제만 할 수 있었으면 집에 도착한 당일에 모든 가구를 드 받을 수 있었는데… 심지어 아내의 페이팔로 결제하려다 결제는 안되고 아내의 카드는 결제가 되어버렸다. 이런. 물론 당연하 결제는 안 된 거겠지만 괜스레 스트레스를 받는다. 대환장의 파티구나.

그 난리를 치다 보니 콜밴이 올 시간이 됐다. 집주인에게 감사 카톡을 보내고 주차장으로 짐을 끌고 갔다. 밖엔 비가 온다. 만약 평소의 이사였다면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겠지만, 오늘은 상관없었다. 스타렉스 한 대에 미국에서 우리가 의지할 물건들이 다 담겼다. 전에도 그랬지만 또 처음부터 다시 시작인 것이다. 세 명의 사람과 세 개의 이민 가방, 세 개의 중대형 캐리어, 세 개의 소형 캐리어, 그리고 세 개의 배낭이 전부다. 물론 세보면 무척 많지만, 그게 지금 우리가 가진 전부다. 세 명의 한 식구가 가진 전부.

비를 뚫고 인천으로 향한다. 하룻밤 영종도의 한 호텔을 예약했다. 사실 예약할 때는 잘 몰랐는데, 7월 31일, 8월 1일이면 여름휴가 성수기다. 그래서 그런지 비가 그렇게 오는데도 사람이 많았다. 특히 선착장은 고등학교 시절 이후로는 온 적이 없었는데, 완전 관광지 분위기인 게 신기했다.

제법 그럴싸한 호텔이었다. 나름 오션뷰이기도 하고. 물론 비가 오고 날씨가 흐려서 특별히 뷰가 좋을 건 없지만, 날씨가 좋았으면 멋졌겠다 싶다. 점심은 조개구이집에서 해물 칼국수와 라면을 먹고, 저녁은 편도로 때웠다. 어쩌면 한국에서의 마지막 만찬이었겠지만, 이주 준비에 너무 지친 나머지, 모든 게 다 귀찮아졌다.

아내는 비행 공포증이 있기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거의 5년 만에 장거리 비행이다. 앞에 있는 작은 장애물 하나하나부터 넘어가면서 이 여정을 잘 마무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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