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엔 장기렌트를 하고 있던 차량을 반납하고, 딸아이의 휴대폰을 해지했다. 이번 미국 이주를 준비하기 전부터 언제든 해를 갈 수 있단 생각에 치를 긴 기간 할부로 구매하거나 휴대폰을 약정을 걸어놓거나 하지 않았다. 보통은 해외 이주를 하게 되면 차를 팔거나 휴대폰/인터넷 약정을 파기하는 게 꽤나 까다롭고 번거로운 일이라는데, 우린 다행히 그런 번거로운 일은 없었다.
자동차 같은 경우는 그저 아침에 탁송 기사님이 오셔서 처를 가지고 가시니 끝이었고, 아이 휴대폰은 가족관계 증명서와 내 신분증으로 십 분 만에 해지를 끝냈다. 이제 남은 건 출국 당일날 아내의 휴대폰을 알뜰폰으로 교체하는 일만 남았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티브이 인터넷 기사가 안 왔다. 내일 직영점에 모뎀과 셋톱박스를 반납해야 한다. 이런…
집에 돌아와선 아마존을 통해 미국 집에 들어갈 생활용품과 일부 가구, 가전들을 구매했다. 이사가 아니기에 모든 걸 처음부터 다 새로 구매해야 한다. 저렴한 것들 위주로 샀는데도 천 불 단위로 결재를 했다. 그런데도 화장실 휴지 같은 필수 용품들 중에서 놓친 게 많다. 오늘 저녁엔 이케아(미국에선 아이키아라고 부른다)에서 가구를 구매해야 한다. 흥미로운 건 아마존은 배송이 길게는 2~3주까지 걸리는데, 이케아는 내일도 배송이 가능하다. 가구 배송인데도 배송비 50불 정도면 배송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선 아마존 역할을 하는 쿠팡은 다음날 오지만, 이케아는 2~3주 걸리는데… 물론 미국같이 땅덩이 넓은 나라에서 하루 배송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느리게 사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점심 때는 회사 동료들이 우리 동네까지 와서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각각 일 년 차이로 입사한 감독님, 팀장님인데, 모두 경력직이다 보니 선배이자 동기처럼 지냈던 소중한 동료들이었다. 같이 작품을 하면서 정이 많이 들었던지라, 나와 우리 가족의 미국행에 가장 많이 축하해주고 가장 많이 아쉬워해 주었다. 오늘 이후로는 지인들을 만날 계획이 없으니, 한국에서 보는 마지막 사람들이다. 언제나처럼 회사 얘기, 개인 신변 얘기 등 밥을 먹으며 두세 시간을 쉴 새 없이 수다를 떨었다. 감독님은 언제든 이렇게 불러서 수다 떨 수 있을 것 같다며 실감이 안 난단다. 나도 그렇다.
내일 아침엔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를 빼는 날이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냉장고 정리를 했다. 최근 한 달 동안 ‘냉장고 파먹기’를 진짜 열심히 했지만 음식물 쓰레기만 5kg 넘게 나왔다. 이사라면 그저 들고 가면 되지만, 해외 이주이다 보니 모두 다 버리고 팔아야 한다. 대형가전은 중고가전매장을 활용했다. 가격은 많이 못 받아도 스트레스가 덜하다. 어쨌거나 오늘도 쓰레기와의 사투다. 이사할 때도 그랬지만 진짜 이렇게 버리다간 천벌 받을 것 같다.
오늘 저녁은 점심때 만났던 동료가 선물한 생크림 케이크로 식사를 대신하기로 했다. 미국에선 맛난 생크림 케이크를 먹기가 진짜 어렵다. 겉으로 보기엔 생크림인데 거의 버터크림이거나 슈가 크림이다. 느끼해서 한 입 이상 못 먹는다. 역시 맛나다. 한국 대기업이 최고지. 근데 밥 대용으로 먹다 보니 생크림 케이크도 느끼하다. 갑자기 당기는 라면. 하지만 냄비 하나 남기지 않은 터라 라면도 끓여먹지 못한다. 결국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 와서 세 식구가 함께 라면으로 입거심을 했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평일이 그렇게 지나갔다. 소중한 사람을 만나 행복했고, 헤어짐은 아쉬웠다. 여전히 짐과 쓰레기 사이에서 머리를 싸매고 있고, 그만큼 남겨진 것들은 사라져 간다. 삼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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