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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에 산다!/와이프 따라 미국 가는 남자 2

2-1 아내가 박사과정 입학 제안을 수락했다

by jcob why 2022.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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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온 것 같은데?'

 

'그래?'

 

차를 세우고 짐칸에서 3개의 이민 가방, 3개의 대형 캐리어, 또 3개의 소형 캐리어를 내린다. 각자 들고 있는 배낭까지 하면 짐은 총 12개다. 우리 눈앞에는 3층짜리 나지막하고 옆으로 긴 아파트가 하나 보인다. 앞으로 우리 가족이 살게 될 집이다.

 

7월 31일, 2년이 조금 못 되는 동안 살았던 월세집을 떠나, 인천의 한 호텔에서 하루를 묵고,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14시간 비행, 캘리포니아에 도착해 12시간을 대기하다가, 다시 비행기에 올라 5시간을 한 번 더 비행해, 8월 2일 마침내 도착한 미국 동부 펜실베이니아의 한 도시. 픽업트럭을 렌트해 아내와 아이, 그리고 한 무더기의 이민 짐을 가지고, 한 시간을 운전해 마침내 한국을 떠나기 전 계약한 아파트에 도착했다.

 

오피스에서 받은 열쇠로 현관을 열자 가파른 계단이 우리를 기다린다. 가방당 25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십여 개의 짐을 하나씩 하나씩 끌고 두 층을 오른다. 3층. 중간 문을 열자 눈앞에 우리 집 문이 바로 보인다. 키를 넣고 돌리자 나름 깔끔하고 아담한, 카펫이 전체 방에 걸쳐 깔려 있는 전형적인 미국의 아파트(?) 집이다.

 

아무것도 없는 집. 은근히 찌는 더위에 커다란 짐을 올리느라 온 몸이 땀에 절을 채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3일 만에 우리 가족만의 공간에 마침내 도착했다. 아내가 미국 박사과정에 지원하고 첫 합격 통지를 받고는 6개월여 만이다.

 

‘드디어 왔네.’

 

‘드디어 왔어.’

 

드디어 왔다.


아내가 십수 개의 미국 대학 박사과정에 지원하고 약 3개월의 기다림 끝에 첫 합격 통지를 받았다. 2022년을 맞이하며 그토록 기대하며 기다리던 소식이었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소식은 아내와 나, 그리고 아이까지 멍하게 만들었다.

 

‘이제 미국 갈 준비를 해야겠네.’

 

우리 가족은 약 9년 전 여러 문제 때문에 아내가 어렵게 취득한 취업 비자를 마다하고 6년을 살던 미국을 떠나 한국으로 귀국했었다. 그때만 해도 문제만 해결하고 나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짧은 시간 안에 다시 미국으로 향할 거란 생각에, 일부러(?) 월세 살이에 장기 렌터카를 사용하고, 가구나 짐을 크게 늘리지 않으려 애쓰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번의 시도에도 번번이 다시 미국으로 향하는 길은 막히곤 했다. 그 사이 십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은 한국 사회에 꽤나 정착하고 있었다.

 

이번 아내의 박사 과정 지원은 어쩌면 우리 가족의 미국 이주 마지막 시도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결과에 대해 간절한 바람을 가지면서도 큰 기대를 걸지 못했다. 이러한 태도 때문인지 삶의 터전을 나라에서 나라로 옮기는 과정은 실로 엄청난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과정임에도, 실제로 합격 통지를 받기 전까지는 체감할 만한 무게를 느끼지 못했다. 아마도 여러 번의 시도가 좌절되어서, 실제로 그 일이 벌어질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첫 합격 통지를 받기 직전까지 아예 미국에 가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에 휩싸여 몇 주를 생활했었다. 그렇기에 첫 합격 소식, 특히 장학금에 연구비 지원, 의료보험 지원까지 준다는 소식은 적어도 올해 하반기에는 우리 가족 모두 미국에 간다는 확실한 미래도 함께 선사해 주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아니지.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변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옮겨간 것뿐이지.

 

나는 변화를 잘 대면하지 못하는 편이다. 삶의 루틴이 분명하고, 관성을 벗어나는 행위에 굉장한 불편함을 느낀다. 그리고 두려움도 매우 큰 편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예측이 되지 않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인 듯싶다. 즉, 여전히 우리 가족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아내의 첫 합격 소식부터 출국까지 약 반년의 시간은 불확실한 미래를 확신으로 바꾸는 과정이었다. 이는 실체적으로 준비하는 과정이기도 했지만,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확신으로 바꿔야 했다.

 

반 년동안 수많은 일들이 생겼고, 예상했던 일들,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우리 가족을 흔들었다. 이대로 다시 주저앉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가족들 모두 무사히 미국에 왔다. 이제부턴 아내의 합격 이후부터 미국에 도착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Photo by Tim Alex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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