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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에 산다!/주부 남편 아빠 미국 정착 일기

D+329 미국 초등학교 서머 캠프

by jcob why 2023.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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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겹디 지겨운 스케줄 하나 없는 여름 방학이 벌써 3주가 지나고, 마침내 딸아이의 초등학교에서 운영하는 서머 캠프가 이번 주에 시작했다. 아무런 스케줄도 없이 그저 티브이 보고 게임 하고 숙제 조금 끄적이던 딸아에도 마침내 여름 스케줄이 생겼다.

우리 지역에서 보통 서머 캠프는 학교에서 운영하는 서머 캠프와, 사설 업체에서 운영하는 서머 캠프가 있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서머 캠프는 학교 방과 후 특별활동 선생님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이다. 아이가 안면이 있는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많이 참여를 하기 때문에 익숙하게 참여할 수 있고, 금액도 저렴한 편이다. 하지만 반나절밖에 진행하지 않고 최대 2주만 하기 때문에 아이를 맡겨야 하는 맞벌이 부부에겐 적절하지 않은 편이다.

사설 업체에서 운영하는 서머 캠프는 방학 시작부터 개학 전 주까지 운영하고, 시작과 끝이 학기 중의 학교 시간과 동일하다. 그리고 업체에 따라 전문화되어 있는 주제로 캠프를 진행하는데, 주 단위로 등록할 수 있어 여러 개의 캠프를 섞어가면서 등록하곤 한다. 9시에 시작해서 4시에 끝나는 종일반 일정이라서 가격은 비싼 편이다.

아이에게 너무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기도 하고,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많이 되는 편이라, 전체 방학 중에서 3주만 캠프를 신청했다. 학교 캠프 2주, 외부 캠프 1주, 이렇게 신청했다. 왠지 아이를 캠프에만 맡겨 놓고 자신의 삶에만 집중하는 못난 부모 모습 클리셰가 난무하는 할리우드 하이틴 영화도 한몫했다.

방학이 오기 전부터 아이는 캠프에 참여하기를 무척이나 싫어했다. 매번 반복되는 반응이라 이젠 적응이 될 만한데도, 아이의 이런 반응이 너무나도 싫다. 뭔지도 모르면서 일단 싫다고 보는 반응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은,

‘Do I have a choice, anyway?’

영어로 빈정대는 이 말투를 듣고 있노라면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런 마음은 꾹꾹 눌러 담는다. 다녀오고 나면 누구보다 신나게 즐기고 온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냥은 못 넘어가고 한마디는 꼭 덧붙인다.

‘그렇게 뭐든 다 싫다고 하면, 싫어하는 것만 해야 돼.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고. 그래니까 잘 고민하고 하고 싶은 걸 찾아. 아무것도 안 하고 방학을 보내진 않을 거야.‘

방학 3주를 지내보니, 할리우드 클리셰가 어떻든, 아이를 정성스레 키우는 부모 코스프레이든, 경제 상황이 어떻든, 캠프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 홀로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무료함이 아니었다. 전의 글에서 썼듯, 아이에게 허락한 미디어 소비는 점심시간이 오기도 전에 다 끝나 버리고, 그다음부터 아이의 심심하다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방학하고 3주간 날씨도 좋은 편이 아니어서 어디 갈 만한 곳도 마땅치 않았다. 아파트 수영장이 해결해 주겠지 했는데, 캐나다 산불 탓에 절반만 갔는데도 지루해졌다. (몸이 까맣게 탄 건 덤이다. 처음엔 좋다 싶었는데-태닝을 좋아한다-좀만 더 태웠다간 껍질 다 벗겨질 태세다)

그러던 중 반갑게 학교 캠프가 시작했다. 12시까지 반나절이지만, 그게 어딘가 싶다. 등교 시간은 9시까지. 아쉽게 학교 버스 운행은 없어서 학교까지 데려다주어야 한다. 하교 때도 마찬가지다. 사실 데려다 주교 데리고 오는데 시간을 다 써서 나한텐 무슨 이득이 있나 싶다.

아이가 반나절이라도 캠프를 다녀오면 세 가지 이득이 있다. 첫째로, 아주 당연하지만, 아이에게 즐거운 추억과 경험이 쌓인다. 학교 캠프는 세 시간을 가득 채워 야외 잔디 운동장에서 거의 풀로 뛰어다닌다. 공놀이를 하기도 하고 다양한 기구를 이용해 놀기도 한다. 휴식을 위해 실내로 들어가는 시간도 있지만, 그 시간도 대부분 신체 활동이다. 그러다 보니 같이 참여하는 친구들과 많이 친해지고, 추억도 쌓을 수 있다. 학교 캠프니까 모두 학교에 같이 다니는 친구들인데, 방학에 짧게나마 같이 활동하니 개학하면 더 친밀감을 느낄 수도 있다.

둘째로는 세 시간 동안 아이가 학교를 다녀오니 아주 짧게라도 개인 시간을 쓸 수 있다. 아이가 학교에 데려다주는 기간 동안은 아내도 학교를 데려다 주기로 했는데, 그러고 집에 돌아오면 10시가 넘는다. 아이를 데리러 11시 45분엔 나가야 하니까 사실 집에 홀로 있는 시간은 두 시간이 안 된다. 전업 주부인 분들은 이해하시겠지만, 홀로 보내는 시간이 아예 없는 것과 30분이라도 있는 것은 삶의 질이 천지 차이다. 지난 3주 동안 아이와 둘이서 24시간 내내 붙어 있는 것이 꽤나 지쳤었는데, 조금 숨통이 트였달까? 별 걸 하지는 않는다. 그저 최근 못하고 있던 유튜브 촬영을 했다. 사실 전업 주부에겐 별 것 아닌 것들이 작은 도피처가 되곤 한다.

세 번째는 아이의 하루 시간표가 조금 더 풍성해졌다는 점이다. 세 시간의 활동으로 오전을 채우니, 오후엔 방학 숙제, 미디어 소비, 독서, 수영장 등, 오히려 시간이 모자라다. 아이가 책 읽는 시간을 줄이기 싫어 게임을 줄일 정도니, 속으로 엄청 흐뭇하다. 아침에 신체 활동을 잔뜩 하고 오니 점심도 잘 먹고, 밤에 피곤해서 잠도 잘 잔다. 이 정도의 외부 활동이 아이의 여름 방학에 딱 적당하다 생각이 들 정도다.

사실, 한국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아이는 아마도 초등학교 5학년 여름 방학을 맞았을 거다. (물론 아직은 아니었겠지만) 학기 중에도 세네 개의 학원, 방학엔 특강까지 늘려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학업으로 푸시하는 성향이 아니라고 늘 말하면서도 한국에선 슬금슬금 남들을 따라갔다. 지금 그러지 않아도 됨에 감사하다.

얼마 전에 이곳에서도 한국 부모님들이 한국에서처럼 다양한 과외 활동을 아이들에게 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은 한국으로 돌아가실 단기 체류자 분들인데,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과는 살짝 거리가 있어 속으로 살짝 안도했다. 물론 올해가 첫 방학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아이가 원하지 않는 수많은 아카데미와 레슨으로 숨 막히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 하지만 지금은 이 아이가 (약간의 비속어가 자동수정됐다) 워낙 하고 싶어 하는 게 없어, 다음 학기부턴 강제로 한두 개는 시킬 듯하다.

Photo by Robert Collin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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