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남자아이들이 가졌던 궁금증 중에 하나가 ‘마징가와 태권브이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라는 거였어요. 각각 다른 두 작품에서 최고의 능력을 보여주는 두 거대 로봇이 싸우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건 매우 흥미로운 상상이었어요. 그렇게 티브이에서 새로운 로봇 애니메이션이 방영될 때마다 ‘메칸더는? 그랜다이저는?’ 이러면서 각 작품의 대표 로봇들이 서로 대결을 펼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죠.
그런데 이 일이 실제로 벌어졌어요! 일본의 게임 중에 하나인 슈퍼 로봇대전에서 모든 로봇 캐릭터들이 등장해서 함께 전투를 치르는 내용을 만든 거예요. 어린이들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일들이 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벌어진 것이죠. 굉장히 멋진 이 일은 대부분의 등장 로봇 캐릭터들이 반다이라는 한 회사에서 제작한 작품의 캐릭터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어린이들은 마징가와 태권브이가 싸우는 모습은 볼 수 없었어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한데요. 두 작품을 만든 회사가 서로 다르고, 두 회사가 그런 작품을 만드는 것을 기획한 적이 없기 때문이겠죠?
사실 서로 다른 회사가 각자의 대표 캐릭터를 가지고 함께 출연하는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녜요. 기업 입장에서만 보면 누가 더 남는 장사인가에 대한 의견도 다를 것이고, 작품적으로는 누구의 캐릭터가 더 돋보이는 내용이 될 것인가에 대한 다툼도 생기게 되죠. 무엇보다 다양한 사업에 대한 판권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그런 문제들을 풀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어벤저스에서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헐크가 함께 악당과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되었지만, 사실 그들은 모두 마블의 캐릭터예요. 스파이더맨이 어벤저스에 등장하는 것도 쉽지 않았죠. 스파이더맨은 마블의 캐릭터지만, 극장 판권을 과거에 소니에게 팔았거든요. 그래서 스파이더맨은 여전히 소니에게 그 판권이 있답니다. 마블은 엄청난 손해를 무릅쓰고 소니에게 비용을 지불해가면서 어벤저스를 만들었어요. 스파이더맨의 파괴력이 그만큼 크니까요.
배트맨과 슈퍼맨이 싸우는 모습도 보게 되었지만, 이들은 또 모두 DC의 캐릭터들이에요. 우리가 궁금한 건, 배트맨과 아이언맨이 싸우는 장면이 아닐까 싶은데, 이런 작품을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에요. 그만큼 판권 문제와 수익 배분의 문제가 쉽지 않거든요.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많은 애니메이션에서도 같은 상상을 해 보신 적이 있을지도 몰라요. ‘신비 아파트’의 유령들을 물리치기 위해 갑자기 ‘카봇’ 로봇이 등장해 물리치는 것을 상상하실지도 몰라요. ‘뽀로로’와 ‘크롱’이 나와서 ‘아기 상어’ 노래를 부르는 것을 상상하실지도 몰라요. ‘핑크퐁’ 캐릭터가 갑자기 ‘엄마 까투리’에 등장하는 것을 바라기도 하죠. 하지만 이런 일은 쉽지가 않을 거예요. 서로 다른 제작사가 만든 캐릭터들의 가치가 다른 회사의 캐릭터들과 섞이는 것을 원하는 제작사는 많지 않거든요.
그렇다면 마블이나 DC처럼 같은 회사의 여러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작품을 기대할 수는 있지 않을까요? 그건 가능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많은 제작사들의 캐릭터와 작품들이 생각보다 복잡한 권리관계를 가지고 있답니다. 애니메이션 제작사들 중에 온전히 자기 자본만 가지고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다양한 자본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작품을 제작하고 그 권리를 나누죠. 그러다 보면 아무리 같은 제작사에서 만든 작품들의 캐릭터들이라 하더라도, 한 작품에 여러 다른 작품의 캐릭터가 나오는 것이 쉽지 않고 복잡할 수 있어요. 서로 다른 투자자들이 권리를 나누고 있다 보니 모든 투자사들의 동의를 얻어내기 쉽지 않은 것이죠.
실제로 앞서 말한 ‘슈퍼 로봇대전’이라는 게임에서도 이런 상황에 처해 어려움이 있었어요. 초창기 ‘슈퍼 로봇대전’에는 ‘마크로스’라는 작품의 캐릭터가 들어갔었는데, 해외 진출을 하면서 문제가 생겼어요. ‘마크로스’는 반다이의 작품이긴 했지만, 해외 판권은 다른 회사가 가지고 있었거든요. 결국 게임 제작사는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마크로스’의 캐릭터를 배제한 채 해외판 ‘슈퍼 로봇대전’ 시리즈를 출시하고 말았죠. 이처럼 권리 관계는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요.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더 많이 성장하고 사업적 성과를 거둬서, 자체 자본만으로 작품들을 제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투자를 받더라도 다양한 사업권리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좋은 작품을 많이 제작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다양한 캐릭터들이 서로 작품을 넘나들면서 어린이들에게,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다양한 재미를 경험하게 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뿐만 아니라 다양한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국내 시장 활성화를 위해 상식을 뛰어넘는 컬래버레이션도 진행해 보았으면 좋겠어요. 그런다면 우리는 마징가와 태권브이가 싸우는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우리의 아이들은 못된 악당을 물리치기 위해 카봇과 또봇이 힘을 합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나는 애니피디다! > 애니 만드는 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비하고 놀라운 FX의 세계 (0) | 2022.10.22 |
---|---|
3D 영상은 어떻게 만들까? (0) | 2022.10.21 |
엇갈린 운명 (0) | 2022.10.18 |
애니 기획자의 하루 (1) | 2022.10.14 |
음악이 주는 마법 (0) | 2022.10.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