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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애니피디다!/애니 만드는 남자

아빠는 아이의 자부심이다

by jcob why 2022.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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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아이와 단둘이 볼링을 치고 나서 수제비를 먹으러 음식점에 들어갔어요. 조용한 음식점에서 수제비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 안쪽에서 계속 음악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티브이에서 나는 소린가보다 하고 있는데, 제 아이가 음악 소리 나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더니,

아빠가 만든 00 만화 노래다.


하고 알아채는 거 있죠. 제가 직접 만든 노래는 아니었지만, 저희 회사에서 만든 키즈팝 노래였어요. 안쪽에 앉아있던 가족의 아이가 밥을 먹으면서 유튜브로 저희 회사 영상을 보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저야 회사에서 내내 그런 음악들을 만들고 듣고 검수하고 그러다 보니 오히려 밖에 나와서 그런 음악을 들으면 ‘응?’ 하며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 아이는 듣자마자 아빠(가 다니는 회사)가 만든 노래인 걸 단박에 알아채더라고요.

친구와 같이 텔레비전을 보거나, 장난감 가게에 갔을 때에도 마찬가지예요. 티브이에서 저희 회사 작품, 특히 제가 제작한 작품을 보면 아빠가 만든 작품이라고 자랑하기 바쁘죠. 장난감 가게에서도 모르는 아이가 아빠 회사에서 만든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제게 와서 말해줘요. 아빠가 만든 장난감 인기 많다고. 그런 아이를 보면 나도 모르게 제 일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답니다.

한 번은 제 회사 동료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제 아이가 (제 동료의 아들인) 친구에게 아빠가 00 만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자랑을 하는 거예요. 그 친구의 아빠도 같은 일을 하는데요. 하하. 제가 프로듀서, 동료는 감독이었죠. 서로 자기 아빠가 00 만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을 보니 웃기기도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자부심도 한 번쯤 큰 위기를 겪는답니다. 바로 아이가 크는 것이죠. 저는 언제나 유아용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는데, 제 아이는 유아에 머물러 있지만은 않거든요. 제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난 뒤의 어느 날, 수저통을 다른 것으로 바꿔달라고 조르더라고요. 아이의 수저통은 저희 회사에서 만든 캐릭터가 큼지막하게 들어간 제품이었는데, 친구들이 보기에 창피하다는 거예요. 초등학생들은 더 이상 00 만화를 유치해서 보지 않는다면서 말이죠. 저도 어렸을 적 그랬기도 하고, 회사 선배로부터 많이 들어왔던 일화라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서운하던걸요?

그래서 그런지, 많은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이 작품을 거듭하면서 더 높은 나이대의 어린이들을 타깃으로 하는 작품 만들기를 선호해요. 물론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디즈니, 픽사 작품을 보면서 애니메이션 제작자를 꿈꾸었기 때문에, 아이가 있던 없던 누구나 그런 경향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보통 하이 타깃 애니메이션 제작을 시도하는 제작자들을 보면 아이가 점점 자라고 있단 사실을 알게 돼요. 거기에 아들이면 남아물, 딸이면 여아물, 이렇기도 하고요. 하하.

이젠 그렇게 창피해하던 시기도 지나고, 아빠의 직업 자체에 대한 관심도 많이 줄어들었어요. (서운 서운) 하지만 아직도 지난 주말처럼 아빠가 만든 작업물에 대해서 알아주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답니다. 애니메이션 프로듀서라는 제 직업 덕분에, 제 아이가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제 일과 직업에 대한 관심을 가져줬다는 건 꽤나 기분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아이가 더 크더라도, 00 만화를 만든 아빠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아빠를 뿌듯해하고, 존경해 줬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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