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는 애니피디다!/애니 만드는 남자

매력 있는 캐릭터 만들기

by jcob why 2022. 10. 4.
728x90

전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회사 프랜차이즈 작품의 후속 시즌 프로듀서로서 애니메이션 제작을 해왔는데요. 그러다 보면 처음 작품을 만드신 분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가게 돼요. 새로운 시즌에 새로운 캐릭터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기존 캐릭터들의 특징을 보완하거나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 특징의 캐릭터를 만드는데 집중하게 되죠.

 

아무래도 성공의 기회가 많지 않은 애니메이션 산업에서 후속 시즌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큰 축복이다 보니, 유명 프랜차이즈 작품의 후속 시즌 프로듀서로서 제작을 한다는 것 자체가 큰 영광이기도 하지만, 작지 않은 단점도 있는 것 같아요. 그중에 하나가 바로, 매력 있는 캐릭터를 새로 만드는 능력을 키울 기회가 많이 없다는 것이죠.

 

신작 기획을 이어오면서 제가 가장 힘든 부분이 바로 ‘매력 있는 캐릭터 만들기’ 예요. 이미 좋은 캐릭터가 있는 작품의 후속 시즌을 진행해 오다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캐릭터 만들기가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어른들을 위한 작품을 만들고, 캐릭터를 만든다면 조금 더 쉬웠을까요?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특히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고 매력을 느낄만한 좋은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캐릭터를 만들 때에는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요. 캐릭터의 이름/성별/나이/직업과 같은 기본 정보부터, 성격/행동습관/말 습관과 같은 설정들, 그리고 캐릭터의 백 스토리와 겉으로 보이는 외관까지, 정말 다양한 부분을 고민하고 토의해서 결정하죠. 지난번 글인 ‘상상한 것들이 믿어지게’ 편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런 모든 결정 요소들이 ‘믿음직’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죠. 그런데 그것이 과연 매력 있는 캐릭터로 만들어졌는가는 또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신작을 기획/제작하면서 이 부분이 가장 큰 고민인 것 같아요. 국내의 애니메이션 티브이 시리즈 시장을 보면, 매력적인 캐릭터를 가진 작품들이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것들을 알 수 있어요. 뽀로로를 비롯해 코코몽이나 폴리, 타요, 또봇, 카봇, 터닝 메카드, 그리고 슈퍼윙스나 핑크퐁, 펭수까지, 캐릭터의 장점을 앞세운 다양한 작품들이 사랑을 받고 있죠. 캐릭터가 매력적인 작품들이 무조건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성공한 작품들을 보면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있었어요.

 

어린이들, 혹은 사람들은 어떤 캐릭터들을 매력 있다고 생각할까요? 지난 글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그저 예쁘고 잘생기면 매력을 느낄까요? 아니면 능력이 아주 출중하면 매력이 느껴질까요? 과연 매력이 넘치는 캐릭터, 그래서 작품을 계속 보고 싶고, 그 캐릭터가 어떻게 할지 계속 궁금해지는, 그런 캐릭터는 과연 어떤 캐릭터일까요?

 

여러 고민을 하다가 오래전 (그리 오래 전은 아닙니다만)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김영하 소설가님이 하셨던 말이 떠올랐어요. 김영하 님은 사랑받는 캐릭터들은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시더라고요. 그 세 가지는 아래와 같아요.

1. 충분한 고통을 받아야 한다.
2.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3. 목표를 이룰 적어도 한 번의 기회는 있어야 한다.

 

그 영상을 보고, 전 바로 이거구나 했어요. 실낱 같은 희망을 보았다고나 할까요? 그동안 캐릭터를 만들어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가, ‘모든 사람의 취향이 다른데 그 취향을 어떻게 맞추나’ 하는 것이었어요. 캐릭터의 매력이라는 부분을 이야기와 분리해서 캐릭터 자체에만 집중했던 거죠. 그러다 보니 그런 매력은 사람마다 호불호가 나뉠 수밖에 없고, 같이 작업하는 동료들이나 팀장, 사장님을 설득하기도 어려웠던 것 같아요. 사실 캐릭터라는 것이 결국 이야기를 잘 전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캐릭터의 매력이 이야기와 동떨어져 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김영하 님이 말씀하신 캐릭터의 매력은 바로 이렇게 이야기와 잘 조립된 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어요.

 

전 캐릭터를 만들기 위한 또 하나의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여전히 캐릭터들을 만들고 있어요. 어떤 캐릭터들은 기획과 설정, 그리고 디자인까지 거의 마무리되어가고, 어떤 캐릭터들은 아직도 기획이나 설정에 머물러있기도 해요. 그 과정이 매우 지난하긴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수많은 고민과 솔루션이 모여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서 빨리 제 고민의 결과물인 캐릭터를 우리 아이들에게 선보이고 싶네요.


현직 애니메이션 프로듀서입니다. 아이들을 위한 재밌고 유익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제 일을 하면서 느끼는 점, 재미있는 일화, 또는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한 정보들을 같이 공유합니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