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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애니피디다!/애니 만드는 남자

애니메이션에서도 연기를 한다

by jcob why 2022.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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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은 영상 콘텐츠의 한 장르예요. 영상 콘텐츠에는 여러 장르가 있지만, 보통은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죠. 학교에 다닐 때 영상 콘텐츠가 보통 세 가지 장르로 구분된다고 배웠는데요, 내러티브, 다큐멘터리, 익스페리멘탈(실험) 장르였어요. 보통 우리가 보는 영상 콘텐츠는 이 세 가지 장르 중, 내러티브와 다큐멘터리 장르를 많이 보는데요. 애니메이션은 거의 대부분의 작품이 내러티브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아무래도 애니메이션은 움직이는 그림으로 표현된 영상 콘텐츠다 보니 다큐멘터리는 거의 없고, 오히려 실험 장르의 콘텐츠가 더 많기도 해요. 학생들의 졸업작품을 보면 내러티브보다 실험 작품이 더 많기도 하답니다. 물론 상업 애니메이션은 99.99%가 내러티브 작품이에요.

 

내러티브 장르의 영상 콘텐츠는 자연스럽게 연기자의 연기가 뒤따르죠. 라이브 액션(실사) 작품의 경우 연기자의 연기를 카메라에 담아 내용을 전달해요. 연기자의 표현이 극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죠. 연기를 얼마나 잘하느냐가 좋은 작품이 되느냐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기도 해요. 그래서인지 영화 관련 시상식을 지켜보면 가장 중요한 시상 중에 하나가 바로 배우상이죠. 남/여우주연상, 조연상 등에 대중의 관심이 높아요. 감독상이나 작품상에도 관심이 높지만, 대중의 관심은 아무래도 배우상에 집중되곤 하죠.

 

애니메이션도 연기가 중요해요. 움직이는 그림인데, 실제 사람이 연기를 하지는 않잖아요. 그럼에도 작품에서의 연기는 무척이나 중요하답니다. 그럼 애니메이션에선 누가 연기를 할까요?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아마도 목소리 연기자일 거예요. 움직이는 그림에 목소리를 통해 감정과 생동감을 불어넣어요. 그렇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작품에서 목소리 더빙은 굉장히 중요한 과정 중에 하나랍니다.

 

프로듀서로서 작품을 제작하면서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 하나 있었어요. 국내에서는 대부분 영상을 모두 제작하고 나서 목소리 연기자의 더빙 작업을 하는데요. 그전까지는 작품의 재미가 잘 느껴지지 않는 거예요. 유아용 애니메이션에서는 캐릭터들 사이에서 주고받는 아기자기한 대사들과 목소리를 통한 신선한 감정 전달이 재미를 북돋는 경우가 많은데요. 영상을 만드는 내내 가더빙의 우중충한(?) 목소리들이 재미를 많이 반감시키거든요. 요즘은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지만, 과거에는 가더빙을 스태프들이 모여서 엉성한 목소리로 녹음하는 경우도 많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영상을 만드는 내내 에피소드가 재미있는지 없는지 반신반의하면서 작품을 만들기도 했었죠. (이런 이유 때문에 요즘은 국내에서도 목소리 연기자와 선녹음을 하는 사례가 많이 늘어나고 있어요)

 

하지만 더빙에 들어가서 목소리 연기자들과 녹음을 진행하면, 마치 마법과 같이 캐릭터들이 살아나요. 시나리오를 쓰면서 생각했던 감정들을 귀신처럼 잡아주고, 제작진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디테일까지 잡아주는 경우도 많아요. 프로듀서로서 반신반의했던 이야기의 재미가 마법처럼 되살아나는 거죠. 저와 작품을 함께 했던 수많은 목소리 연기자분들께 늘 한없이 감사드린답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의 연기는 목소리 연기에만 그치지 않아요. 그렇다면 누가 또 연기를 할까요? 바로 애니메이터들이 또 다른 연기자들이랍니다. 애니메이션에는 2D 애니메이션과 3D 애니메이션의 제작 방식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애니메이터들이 연기를 하는 방법도 완전히 달라요. 툴도 다르고 캐릭터를 움직이게 하는 방식도 완전히 다르지만, 그래도 애니메이터들이 연기자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같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저희 학교의 애니메이터 지망생들은 필수 과목으로 연기 수업을 들었어요. 연기자들이 연기하는 방식을 배워서 이를 애니메이션에도 적용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 거예요. 실사 영화에서 연기자의 연기로 이야기를 표현하는 것처럼 애니메이션에서도 캐릭터의 연기가 이야기를 표현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실제 연기를 배우는 거예요. 또 인체 해부학이나, 물리 법칙도 공부해요. 사람이 실제로 움직일 수 없는 동작을 캐릭터가 하게 되면 시청자들에게 어색하게 느껴지죠. 중력이나 물리법칙에 어긋나는 움직임도 그래요. 그러다 보니 애니메이터들은 공부할 게 아주 많아요.

 

애니메이팅 수업에 들어가 보면, 사소한 동작을 만드는 과제를 하기 위해 직접 연기한 모습을 촬영해 보고 이를 다시 캐릭터 동작으로 구현하는 과정을 거치더라고요. 작은 동작 하나하나까지 정교하게 만들어서 시청자들이 믿을 수 있는 동작으로 만들어내는 거예요.  

 

여기에 감정을 표현하는 수많은 미세한 몸의 움직임도 연구한답니다. 특정 감정선을 표현하기 위해 캐릭터의 습관을 만들어내거나, 호흡 등을 표현하기도 해요. 사실, 캐릭터는 숨을 쉴 필요가 없는데 말이죠. 몇 년 전 회사 팀원들과 함께 디즈니의 '모아나'를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요. 모두들 캐릭터의 연기를 보고 혀를 내둘렀어요. 캐릭터들이 말 그대로 숨을 쉬더라고요. 들숨 날숨을 하면서. 노래를 하면서 중간중간에 숨 쉬는 동작까지 완전히 구현해 내니, 모아나나 마우이의 캐릭터는 살아있는 연기를 펼치고, 관객들은 캐릭터들의 감정을 잘 따라갈 수 있었을 거예요.

 

최근에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모션 캡처를 통해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연기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어요. 전처럼 애니메이터가 오롯이 동작 연기 전체를 책임지는 비중은 점차 줄어들고 있죠. 실사 영화에서의 CG 캐릭터들의 연기나 게임에서의 캐릭터 연기는 많은 부분이 모션 캡처를 통해 이뤄지고 있어요. 그래도 아직은 기술적인 오류가 많이 있어서, 애니메이터들의 연기자 역할은 줄지 않고 있답니다. 또 사람 형태의 이족 보행 캐릭터가 아니라면 모션 캡처가 어려운 점도 있어요.

 

애니메이션에서의 연기가 실사 영화와 다른 점 한 가지를 더 이야기해 본다면, 행동 연기와 목소리 연기에 시차가 있다는 점이에요. 실사 영화를 제작할 때는, 연기자가 행동 연기를 하면서 목소리 연기도 함께 하죠. 행동 연기자와 목소리 연기자로 같은 사람이에요. 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행동 연기의 경우에는 애니메이터가, (모션 캡처를 할 경우에는 모션 캡처 연기자가 하죠) 목소리 연기는 성우(혹은 목소리 연기자)가 해요. 선녹음을 하건 후녹음을 하건, 행동 연기와 시차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그러다 보니 연출자, 제작자의 의도가 제작 단계에서 매우 선명해야 하고, 애니메이터나 목소리 연기자에게 분명하게 그 의도가 전달되어야만 원하는 연기가 표현될 수 있어요.

 

조금 길어졌네요. 애니메이션에서도 연기자(애니메이터와 목소리 연기자 모두)의 적절한 연기가 표현되어야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답니다. 다음에 애니메이션을 감상할 기회가 있으시다면, 애니메이터와 목소리 연기자가 협업한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훌륭한 연기를 살펴보시는 것도 재미있는 감상 포인트가 아닐까 싶어요.


현직 애니메이션 프로듀서입니다. 아이들을 위한 재밌고 유익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제 일을 하면서 느끼는 점, 재미있는 일화, 또는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한 정보들을 같이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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