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이후 정부와 언론에서는 콘텐츠 산업이 미래 먹거리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영화 한 편이 거두는 수익이 무슨 자동차를 몇 대 파는 효과라든지, 문화 산업이 너무너무 중요하다고 말이죠. 정부와 언론의 이러한 말들 덕분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산업에 종사하시는 많은 분들의 끝없는 노력 덕분이었는지, 우리나라의 콘텐츠 산업은 엄청 많이 성장했어요. 특히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케이팝 분야에서의 성과가 두드러지죠. 애니메이션 산업도 콘텐츠 산업의 일종이고, 과거보다는 콘텐츠 산업 육성 정책의 혜택을 미약하게나마 받은 것이 사실이에요.
그전까지 우리나라는 애니메이션 제작 하청의 첨병으로 산업을 지탱했어요. 셀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손재주를 인정받았던 우리나라는 일본이나 미국의 2D 애니메이션 제작 하청을 받아서 이를 제작하고 납품해 돈을 벌어왔어요. 정말 잘 나가던 80~90년대에는 유명한 작화 감독님이 작업을 마치고 제출한 뒤 종이백에 만 원권 다발을 잔뜩 담아서 집으로 돌어가셨다고 할 정도로 제작 하청이 잘 돌아가던 시절이 있었죠.
하지만 우리나라도 인건비가 많이 올라가고 다른 나라의 하청 기지가 발전하면서, 또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이 변하면서 이런 제작 하청은 많이 줄어들고 있어요. 아직도 유명 프랜차이즈 애니메이션을 국내에서 하청을 하거나, 제작 투자를 같이 해서 진행하기는 하지만, 소수의 회사에서만 잔행하고 있죠.
그 사이, 많은 애니메이션 산업 종사자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자체 기획 콘텐츠 제작이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어요. 직접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비를 투자해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제작하고 이를 판매해 돈을 버는 거죠. 2003년 "뽀롱뽀롱 뽀로로"가 제작 방영된 이후, 유아용 콘텐츠의 가능성에 눈을 뜬 많은 국내 애니메이션 회사들은 각자의 비전을 가지고 자체 기획 작품을 선보였어요.
애니메이션 회사도 하나의 기업이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면 돈을 벌어야 해요. 과거 제작 하청을 하던 시절에는 원청 제작사에 납품하면 대금을 지급받는 형태로 돈을 벌었는데, 직접 기획 제작을 하면 직접 애니메이션을 팔아 돈을 벌어야 하죠. 그렇다면 애니메이션 회사들은 어떻게 돈을 벌 까요?
제일 먼저 돈을 버는 방법은 애니메이션을 방송사에 팔아 방영권료를 받는 거예요. 애니메이션 제작은 그 전문성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방송사에서 직접 제작이 어려운데요. 그래서 그 옛날 거의 모든 프로그램을 방송사에서 직접 제작하던 시절에도 외주 제작사를 통해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방영해 왔어요. 애니메이션을 제작해서 방송사와 계약을 하면 방송사는 작품을 구매해 방영하고 방영권료라는 돈을 주는 거죠.
하지만 이 방영권료는 전체 제작비에 비하면 아주 작은 돈이어서, 이것만으로는 제작비를 보전하기가 매우 어려워요. 요즘 예능이나 드라마를 보시면 이해가 쉬우실 텐데요. 드라마나 예능 같은 경우도 방송 제작비에 비해 방송사 방영권료가 적기 때문에 수없이 많은 PPL(광고)로 그 제작비를 충당하잖아요. 애니메이션은 인건비 위주에 제작비로 이들 방송보다 훨씬 비싸게 제작하고 있는데, 시청률도 잘 안 나오고 광고도 안 붙어 방영권료가 더 쌀 수밖에 없어요. 슬픈 사실은 애니메이션의 경우 대부분 어린이 콘텐츠인데, 어린이 콘텐츠에는 PPL이나 관련 광고를 붙이는 것이 법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콘텐츠를 제작하는 제작비를 충당하기가 매우 어려운 구조라고 할 수 있어요.
요즘은 조금 나아지는 측면이 있기는 해요. 수많은 뉴미디어들이 등장하면서 작품을 판매할 수 있는 판매처들이 늘어난 것이죠. 전에는 3사 방송사나, EBS, 그리고 몇 개의 케이블 방송사들만 애니메이션을 구매했는데, 요즘은 IPTV나 OTT들이 많이 생기면서 더 많은 곳에 판매할 수 있게 되었죠. 구매처가 많아지면서 경쟁도 되고 그래서 판매 가격도 조금씩 오르고 있어요. 또 글로벌 판매도 전보다 훨씬 용이해졌어요. 전에는 일일이 해외 방송사에 영업을 해서 판매처를 구하고, 또 가격도 잘 받지 못했는데, 요새는 인기가 있다는 데이터를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니까, 가격도 조금 더 잘 쳐주는 편인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이것 만으로는 손익분기점을 넘기기는 쉽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회사들은 다른 방법을 동원해 돈을 더 벌어야 해요. 어린이용 콘텐츠 제작에서 가장 많이 돈을 버는 방법은 바로 머천다이징이에요. 관련 상품을 만들어 파는 거예요. 아이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관련 캐릭터 상품도 인기가 아주 많은데요. 이 때문에 많은 애니메이션 회사들이 캐릭터 상품 개발에 사활을 걸어요. 상품을 개발해 판매를 할 수 있는 권리를 팔고 로열티를 받거나, 혹은 자체적으로 상품을 개발 제작해서 판매하는 방식으로 돈을 벌어요.
상품을 개발해 판매할 권리를 주는 것을 라이선싱이라고 하는데요. 이때는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직접 비용이 들어가는 부분은 크지 않아요. 권리를 구매한 회사가 제품을 개발하고 제작해서 판매하니까요. 애니메이션 회사는 그저 권리만 주고 그에 대한 로열티만 받는 거예요. 그게 단발적인 금액이건, 혹은 수익의 퍼센티지를 받는 조건이건 다양한 방법으로 계약을 하고 돈을 버는 거죠.
상품을 직접 개발/제작해서 판매하면 비용이 많이 들어요. 제품 개발에도 인력이 들고, 개발/제작 단계에서 들어가는 다양한 비용이 들죠. 제품 판매가 잘 된다는 보장도 없어요. 하지만 성공하면 로열티만 받는 것보단 더 큰 수익을 거둘 수 있어요. 그래서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회사들은 위험부담을 안고 직접 상품을 개발해 판매하기도 하죠.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해서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기도 해요. 주로 유아 교육용 프로그램이나 키즈카페와 같은 공간 사업 같은 것들인데요. 어린이들이 다양한 놀이나 체험을 통해 캐릭터들을 경험하게 해 주고 돈을 버는 거예요. 이러한 소비자 경험 서비스의 경우는 요즈음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많이 어렵다고 들었어요. 아무래도 아이들이 모이기는 많이 어려우니까요.
최근 약 20년 동안 국내 애니메이션 기획 제작하는 회사들이 정말 열심히 노력하면서 나름대로 산업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잘 가꾸었다고 볼 수 있어요. 전체 콘텐츠 시장을 보았을 때는 사실 그 규모가 많이 작기는 해요. 영화, 드라마와 같은 영상 콘텐츠 분야나, 케이팝 뮤직 분야, 그리고 게임 산업에 비한다면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은 그 규모가 비교할 수 없이 작죠. 우리나라 바로 옆에 있는 일본이나 엔터테인먼트 강국 미국에서 쏟아지는 고퀄리티 애니메이션 콘텐츠들이 소비 전반을 장악하고 있기도 하고요. 많은 국내 회사들이 소비 연령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쉽지 않은 편이에요. 어른들은 이미 눈이 너무 높아져 버렸거든요. 거기에 유아용 콘텐츠에만 집중하고 있는 사이 출생률 저하로 인해 국내 유아 콘텐츠 시장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 것이 분명해 보이기도 해요.
하지만 많은 회사들이 비관적인 전망에 주저앉지 않고 다양한 활로를 뚫고 있어요.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데 거의 모든 회사들이 사활을 걸고 있죠. 몇 년 전에는 많은 애니메이션 회사들이 유튜브에 엄청난 공을 들였어요. '핑크퐁'처럼 전 세계 구급 인기를 구가하는 일도 생겼죠. 그 외에도 많은 회사들이 세계적 인지도를 조금씩 쌓아갔어요. 유튜브의 유아 콘텐츠 전략이 바뀌면서 예전만큼의 수익은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지만, 우리나라 어린이 콘텐츠의 경쟁력만큼은 입증되는 성과를 거두었어요.
여전히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은 작아요. 소비 시장은 활성화되어 있는데, 국내 산업과는 조금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죠. 하지만 큰 꿈을 꾸고 있답니다. 지금의 20대 초반, 혹은 10대 후반 청소년들이 뽀로로, 코코몽, 폴리, 타요를 보고 자랐던 것처럼, 저희가 기획하는 새로운 콘텐츠를 전 세계의 어린이들이 보고 자라는 꿈 말이에요. 어서 애니메이션의 기생충이나 애니메이션의 BTS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아님, 이미 나왔다고 봐야 하나요? ㅎ 전 이왕이면 제가 만든 작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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