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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에 산다!/주부 남편 아빠 미국 정착 일기

D+26 내가 기대하던 이민 후 일상

by jcob why 2022.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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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정착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자동차 구매를 마침내 이번 주 초에 끝내고 나니, 적어도 나한테 만큼은 한숨 돌릴  있는 여유가 찾아왔다. (쏴리, 자기야~) 다행히 아이는 일주일 동안 학교를  다녀왔고, 주변에서 들어왔던 초등학교에서의 수많은 어려움, 드라마, 그런  하나 없이 대견하게  일주일을  마쳤다. 아내도 지도 교수를 찾지 못할까  조마조마해 가며,  수많은 잘난 동급생들의 스펙에 스트레스받아가며, 험난한 박사과정 생활을 예고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교수도 만나고, 선배들도 만나며 희망을 보인  주였다.

 

난… 월요일에 자동차를 구매하고 정착과 관련한 바쁜 일이 모두 끝나고 나자, 갑자기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새벽부터 아내가 시티로 나가 버리고, 아이도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면 아홉 시. 그때부터 아이를 다시 픽업하러 가야 하는 세시 반까지는 고요한 홀로 생활이 시작된다. 첫날인 화요일엔 그야말로 완전 멍해 있다가, 수요일부턴 내가 주부임을 깨닫고 집안일을 시작했다. 청소하고 빨래하고 설거지에 식사 준비까지, 열심히 하고 났더니 생각보다 후딱 갔다. 아파트에서 제공하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도 했다. 그랬더니 어느새 아이를 다시 데리러 가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학교 다녀온 아이를 씻기고, 아내를 데리러 학교에 다녀오고, 저녁을 준비해서 먹이고, 아이를 재우면 하루가 마무리된다.

 

그렇게 3일이 흘러갔다. 아이는 매일 다른 하루였고, 아내도 다양한 일들을 겪었지만, 나에게는 매일이 같은 하루였다. 그래도 나름 보람찼다.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했고, 아내의 일도 조금씩 풀려가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리고 주말이 되었다. 지난 몇 주간 정착과 적응이라는 이유로 주말도 주말같이 보내지 못했던 터라, 이번 주말은 좀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날씨가 많이 더웠고 해서 아이를 억지로 끌고, 아파트에 있는 수영장을 갔다. 미국에 산다면 집에 딸린 수영장이 또 로망 아니겠는가? 하하하. 아직은 늙은 고학생 부부라 개인 주택에 수영장은 아녀도, 그래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 너무 좋았다.

 

사실 이 집을 정하면서부터 수영장이 있는 것을 알았기에, 진작 아이와 함께 오고 싶었는데, 워낙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하는지라, 오늘은 정말 맘먹고 억지로 데리고 갔다. 처음엔 절대 즐거워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듯 터덜터덜 가더니…

 

완전 신났다!

 

정말 너무너무 신이 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더라. 수영장이 크지도 않았고, 더운 날씨에 아파트 사람들도 많이 나와 있었는데, 그 사이를 헤집고 다니면서 정말 재밌게 놀았다. 일부분은 아이의 키보다 깊은 부분이 있어서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공놀이도 하고, 미국 오기 전에 배웠던 자유형이나 평영 연습도 했다.

 

워낙 아이가 노는 모습이 재밌어 보였는지, 비슷한 또래의 다른 아이들이 우리에게 와서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른들은 거의 태닝을 위해 햇빛을 쬐러 나온 듯했고, 일부 물에 들어와 있는 어른들도 다들 그저 물 안에 서서 대화만 나눌 뿐이었다. 아이와 같이 온 어른들 중에도 아이와 같이 놀아주는 경우는 잘 없었다. 그러다 보니 계속 나와 우리 아이에게 이끌려 온 듯했다. 한 명은 일곱 살 여자 아이였는데, 자기가 수영 잘하는 것을 어지간히 자랑하고 싶었나 보다. 워낙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는 아내는 집에 갈 때까지 그 아이의 장단을 맞춰주었다. 또 한 명은 여덟 아홉 살 정도의 남자아이였는데, 나와 우리 아이 그리고 그 여자아이가 공놀이 주고받는 것을 보더니 함께 하자며 합류했다. 그래서 그저 햇빛을 쬐며 물에 서서 대화를 나누는 어른들 사이에서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게 중에는 조금 민망한 상황도 있었는데, 남자아이가 나더러 우리 딸아이의 오빠냐고 물었다. 그래서 웃으며 오빠가 아니라 아빠라고 했더니 그 아이가 너무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기는 내가 열세네 살인 줄 알았다는 거다. 주변 사람들도 그 아이의 반응에 당황했는지, 저건 칭찬으로 한 말이라며 상황을 무마하려고 애썼다. 서양 사람들이 워낙 동양 사람의 나이를 잘 가늠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는 그러려니 했는데, 오히려 옆에서 상황을 보던 서양 사람들이 당황했나 보다.

 

오후에 해가 살짝 기울면서 조금씩 추워지기 시작했다. 햇살도 좋고 더운 날씨였지만 거의 두 시간을 물에 있다 보니 으슬으슬해지기도 하고, 열 살도 안된 아이들의 대화의 장단을 맞춰주는 것도 슬슬 힘들어졌다. 또 우리 아이와 놀아주려던 목적과는 달리 주객이 전도되어서 우리 아이는 혼자 놀고 아내는 수다쟁이 여자아이와, 나는 활달한 운동 보이 남자아이와 놀아주는 꼴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아이에게 이제 집에 가자고 하는데, 꿈쩍도 하지 않는 게 아닌가? 나중에는 올 때와 같이 억지로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 모두 깨끗이 샤워를 하고 아이스크림으로 당 보충을 하고, 소파에 앉아 늦은 오후를 즐겼다. 아내는 침대에서, 난 아이가 티브이를 보는 동안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그러다 저녁 시간이 되고, 밥을 먹고, 그렇게 하루가 저문다.

 

 꽤나 기대했던 토요일 오후의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점차 자랄 거고, 친구와 놀겠다고 도망가 버릴 거고, 아내의 공부는 점점 바빠지겠지 그래도 어느 정도 초기 정착을 마치니 이런 망중한도 즐길  있구나.

 

이제 다음 주부터는 나도 개인 작업에, 글쓰기에, 바쁘게 보내려고 한다. 그래도 주말엔 오늘 같았으면 한다. 여기가 겨울엔 정말 춥다고 해서 수영장은 곧 문을 닫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평화로운 주말이 더 많았으면 한다.

 

Photo by Jubéo Hernandez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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