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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에 산다!/주부 남편 아빠 미국 정착 일기

D+21(2) 초4 아이의 미국 초등학교 첫 등교

by jcob why 2022.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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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박사 과정 첫 오리엔테이션으로, 나는 중고차 구매로 한창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딸아이는 미국 초등학교 첫 등교를 하게 되었다.

 

미국의 학제는 가을 학기에 학년이 시작되기 때문에 ‘back to school’은 지역 사회에서 정말 큰 행사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리테일 샵에서는 백투스쿨 스페셜 세일을 진행하고, 각 상점마다 학교에서 필요한 준비물이나, 옷, 전자제품 등을 따로 코너를 마련해 판매한다. 한국에서도 2~3월이 되면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다만 아무래도 계절이 늦여름 시기다 보니 늦겨울인 한국보다 더 활기찬 느낌이 많이 든다.

 

주말에 ‘스테이플스’에서 준비물도 사고, 장 보면서 도시락으로 싸줄 샌드위치 빵, 햄, 치즈 등도 구매했다. (물론 그렇게 다니다가 차의 고장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전 글 참조) 만반의 준비를 다 마친 아이는 ‘학교를 가고 싶지만, 가기 싫다’는 어록을 남기기도 했다. 준비는 다 끝났다.


지난 금요일 오전에 학교에서 아이의 영어 실력 검증을 위한 테스트를 진행했다. 우리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 한창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이 조금씩 어려워지는 시기기 때문에 언어가 바뀌면 공부를 따라가기 어려워진다. 사실 공부 자체를 걱정한다기보다는 그로 인해 아이가 너무 위축되거나 자신감을 잃을까 봐 걱정되는 부분이 더 크다. 워낙 활달한 아이가 언어 때문에 소극적인 아이로 바뀔까 봐 걱정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학교에서 영어를 테스트하고, 이에 맞게 ESL 클래스를 운영하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생각했다.

 

아이의 영어 테스트는 꽤 긴 시간 동안 이뤄졌다. 읽기와 쓰기, 말하기와 듣기 전방위적인 테스트가 이뤄졌는데, 아이가 워낙 테스트에 진지하게 임해 시간이 길어진 거다. 아내와 나는 아이가 한 마디도 못하고, 한 글자도 못 쓴 채 테스트를 마칠 줄 알았는데, 선생님의 말씀도 잘 알아듣고 말도 곧잘 했다고 한다. 글쓰기도 워낙 진지하게 길게 써서, 선생님이 신기했는지 아내에게 쓴 글도 보여줬다고 하니, 참으로 대견했다.

 

결과도 생각보다 좋았다. 레벨은 4가 나왔는데, 5를 넘으면 ESL을 듣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우리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영어 수업에 적응할 시간적인 여유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드밴스드 클래스로 한 학기에서 1년 정도만 있으면 될 것 같다고 한다. 딱 좋은 느낌이랄까?

 

ESL 클래스를 하게 되면서 복잡해진 것 하나는 학교가 바뀐다는 점이었다. 원래 배정되었던 학교는 ESL 클래스가 없어서 근처의 다른 학교로 등교를 해야 했다. 그 사실이 확정된 것이 금요일, 주말 지나고 월요일에 학교를 가야 하는데, 그 사이 모든 것이 다 바뀌는 상황이 되었다. 학교 버스 스케줄도 다시 나올 테니 일주일 정도는 기다릴 수 있단다. 아, 라이드를 해줘야 하겠구나.

 

그런데 금요일 저녁에 교욱국 포털에 확인해 보니 아이의 학교 버스 시간표가 나왔다. 그런데 학교 버스 시간표에 아이가 버스를 타는 시간과 장소만 나와 있고, 목적지가 없었다. 이게 원래 가기로 했던 학교로 가는 것인지, 새롭게 배정된 학교로 가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웹페이지 어디를 살펴봐도 확인이 불가능했다. 다행히 학교가 가깝기 때문에 월요일 오전에 버스를 기다려 물어보고, 새 학교로 가는 게 아니면 차로 데려다 주기로 했다.


그렇게 월요일 오전이 밝았고, 아이는 역시나 아침 일찍 깨어 등교 준비에 열성이다. 전날 가방도 다 싸 놓고, 입을 옷도 다 준비해 놓은 터라 천천히 준비해도 될 텐데, 꼭 아침 일곱 시부터 준비를 시작한다. 우린 여덟 시 반에 나가면 되는데…

 

나는 차 구매 스트레스로 새벽 다섯 시에 깼던 지라, 정신을 좀 차리고 아이의 아침 식사와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최근엔 아이가 아침으로 와플을 즐겨 먹는다. 냉동으로 나와 토스터기에 굽기만 하면 되는 초간단 제품(기묘한 이야기에서 일레븐이 좋아하는 그 제품)인데, 아이가 너무 좋아한다. 와플 두 조각과 메이플 시럽, 그리고 우유를 준비해 주면, 옷을 다 갈아입곤 자기가 들고 식탁에 가서 먹는다. 나나 아내는 아침을 잘 먹지 않는 편인데, 아이는 아침을 꼭 먹는다. 한국에서도 자기가 직접 시리얼이나 토스트를 준비해 먹었다.

 

아이가 아침을 먹는 동안 나는 점심 도시락을 준비한다. 아이가 즐겨보는 만화에서도, 내가 어릴 때 보았던 미드에서도, 초등학생들의 점심 도시락은 샌드위치였다. 아이도 그렇게 싸 가고 싶은 모양이다. 샌드위치 도시락통과 종이백에 넣어 달라는 아이의 구체적인 요구에 모두 준비해 놓았다. 토스터기에 식빵을 굽고 거기에 토마토소스, 치즈, 그리고 샌드위치 햄을 넣어 샌드위치를 만든다. 그리고 물병과 간단한 ‘까까’(초코칩 쿠키나 쌀과자, 포춘 쿠키를 번갈아가며 싸 달란다)를 도시락 가방에 넣어줬다. 내가 싼 도시락을 보더니 제법 만족스러운 눈치다. 휴우.

 

어느새 학교 버스 시간이 가까워졌다. 아이와 난 짐을 다 싸고, 버스 정류장으로 나갔다. 미국의 학교 버스.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바로 그 버스다. 노랗고 고전스럽게 생긴 바로 그 버스. 아이는 그 버스에 타는 것을 꽤나 기대하고 있었다. 자기가 그토록 즐겨 봤던 만화나 영화에서 동경했던 그런 일들이 자신에게 펼쳐진다는 것이 그렇게 좋았나 보다.

 

마침내 버스가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난 기사에게 아이가 타는 버스 번호가 맞는지 물어봤다. 맞단다. 그럼 우리 아이 학교에 가는지 물었는데, 아니란다. 원래 배정받았던 학교 가는 버스란다. 그렇구나. 그럼 데려다줘야겠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버스를 보냈다. 그리고는 아이와 함께 차에 올랐다.

 

학교는 차로 5분 거리다. 걸어가기엔 길이 엄청 불편하다. 미국은 거리가 멀어서 차가 꼭 필요한 게 아니라 걸어 다니기 불편하게 되어 있어서 차가 필요하다. 아이 학교까지 가는데 중간에 인도가 없는 길이 절반이 넘는다.

 

학교 근처에 가자 마치 기차 건널목처럼 불이 깜빡이면서 스쿨존 제한속도가 15마일이라고 알린다. 25킬로 수준이다. 한국도 비슷하다. 하지만 미국은 등하교 시간만 운영한다. 평소에는 원래 도로 제한속도인데, 등하교 시간이 되면 제한속도가 바뀐다. 미국에서 이 제한속도를 지키지 않는 건 상상할 수 없다. 안전벨트는 안 해도, 스쿨존은 지킨다. 학교버스가 멈추면 모든 차가 멈춘다. 하나의 문화다.

 

학교에 도착하자 한쪽은 부모들이 라이드 해주는 아이들이 등교하는 문, 다른 한쪽은 스쿨버스를 타고 등교하는 문, 이렇게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놀라웠던 점은 아이들의 등굣길과 하굣길에 대해서 꽤나 진심이라는 점이다. 등하교에 동원되는 선생님이나, 직원, 자원봉사자들이 정말 많고, 한 명의 아이들도 혼자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등교시간도 딱 10분(8:50~9:00)이다. 그 안에 모든 학생이 학교로 다 모인다.

 

딸아이도 차에서 내려 등교하는 수많은 학생들을 바라보면서 자연스럽게 학교 문으로 향한다. 쭈뼛거림도 없다. 너무 당당하게 그냥 학교로 들어가려 하기에, 등교 안내를 해 주고 있는 덩치가 산만한 백인 남자 선생님에게 아이가 학교 처음이니 안내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그 큰 덩치를 무릎까지 반 꿇어 숙이더니 마치 속삭이듯,

 

‘너 새로 왔구나~! 그거 알아? 나도 오늘이 처음이야! 내가 교실로 안내해 줄게. 몇 학년이야?’

 

‘4학년이요.’

 

‘그래그래 같이 가자!’

 

하고는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등교 풍경은 재미있다. 새 학기 시작이라서 더 그렇겠지만, 아빠 엄마 손을 잡은 아이들이 건물 근처에 와서는 다들 아빠 볼에, 엄마 볼에 뽀뽀하고는 학교로 들어간다. 그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하굣길엔 아내가 픽업을 갔다. 아내도 꽤나 긴장했다. 혹시 아이가 학교에서 완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한 마디도 못 알아듣고, 한 마디도 못하고 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울상으로 나올까 봐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가슴 졸이며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내 아이가 나왔고, 아내는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학교가 어땠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도끼눈을 뜨고는 그런 것좀 묻지 말라고 쏘아댄다. 아내는 걱정이 더 많아졌다. 아, 힘들었구나. 근데 그게 아니다. 그냥 요새 딸아이의 엄마, 아빠의 질문에 대한 반응일 뿐이다. 아이는 학교가 너무 재미있었단다. 벌써 친구도 만들었단다. 그리고는 한국에서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듯, 집에 오는 내내, 또 집에서 내내 학교 이야기를 떠들어댔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이는 잠자리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진다. 원래는 잠자리에 눕고 나서도 한참을 떠들다가 한번 혼나고 3~40분 만에 잠들기 마련인데, 정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아마도 본인이 느끼지는 못해도 긴장도 많이 하고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도 많았으리라.

 

그렇게 아이의 미국 초등학교 생활도 시작되었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새로운 곳에서의 새로운 삶이 일상으로 자리 잡아간다.

 

Photo by Meritt Thoma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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