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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5 우왕좌왕 제이콥 씨 아침에 눈을 떠 거실을 바라보는데 마음이 무겁다. 아직도 많은 물건들이 가방도 쓰레기 봉지도 아닌 곳에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하나씩 차근차근하면 된다며 초조해 말라고 하지만, 난 가슴이 답답해 온다. 나만의 특징인 것 같다. 시간을 계산해 보면 당연히 이번 주 주말까지 마칠 수 있음을 알지만, 그냥 하루빨리 이 모든 물건들이 다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오전에 처리해야 할 관공서 일이 몇 가지 있었다. 주민센터(아직도 동사무소가 더 익숙한 세대다)에 가서 해외 체류신청을 하고, 우체국에 가서 친지들에게 일부 소모품들을 나눠주는 소포를 보내야 헸다. 싱글이어서 부모님 댁에 살 때는 이런 건 특별히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주민 등록이 부모님 댁으로 되어 있었으니까. 그런데, 한 가정을 이루어 살고.. 2022. 9. 24.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해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의 어느 봄날, 그렇게 떠나겠다는 원대한 꿈을 꾼 다음 날, 아내는 덜컥 유학원에 거액을 지불했다. ‘얼마라고?’ ‘ㅇ백만 원’ 원래의 나였다면 지불이 불가능한 금액이다. 그 돈을 내지 않아도 지원할 수 있는데. 그 돈 말고도 원서비가 얼마나 비싼데. 그 사람들이 합격시켜주는 것도 아닌데. 난 원래 그렇게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도와주는 사람에게 돈을 지불한다는 것, 납득이 되지 않았다. 사실, 도움을 받는다는 것 자체도 그다지 익숙하지 않았다. 나는 입시를 준비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했다. 학교에서는 한 계단이라도 높은 사다리의 대학을 보내기 위해, 나의 꿈과 진로 따윈 무시한 채 모 학과를 강요했고, 부모는 자신의 가업을 잇게 하기 위해, 문과인 나에게 모 .. 2022. 9. 24.
늘 같은 듯, 늘 다르게 최근 저는 회사에서 신작 애니메이션을 준비하고 있어요. 오랜 기간 동안 회사 프랜차이즈 작품의 시즌 기획과 제작에만 참여하다가, 드디어 제게도 새로운 작품을 기획, 제작할 기회가 온 거죠. 기존의 회사에서 제작했던 작품과 차별화되면서도, 회사 작품의 정체성을 이을 수 있는 새로운 프랜차이즈 개발이라는 중책이 제게 주어졌어요. 사실 기존 프랜차이즈의 시즌 작품을 기획하다 보면, 답답한 것들이 조금 있어요. 아무래도 처음 기획할 때 정해놓은 여러 가지 설정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때 발목을 잡는 경우들이 종종 있거든요. 반면에 정말 새로운 작품을 기획할 때는 그런 어려움은 없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위한 설정을 처음부터 하면 되니까요. 그래서 정말 기대를 많이 했어요. 남이 해 놓은 설정에 맞추어 작.. 2022. 9. 23.
다채로운 색감과 흥겨운 음악이 매력적인 디즈니애니메이션 안녕하세요, 제이콥 와이입니다. 오늘은 지난 2021년 11월 24일에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60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엔칸토’를 소개합니다. 함께 둘러볼까요? 콜롬비아의 한 깊은 산속에 자리 잡은 놀라운 마법의 세계 ‘엔칸토’. 그 마을의 중심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마드리갈’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엔칸토’의 마법 덕분에 ‘마드리갈’ 가족의 구성원들은 다들 신비한 능력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데요. 이상하게도 주인공 ‘미라벨’에게만 아무런 능력이 없어요. 어느 날, ‘마드리갈’ 가족의 집 ‘카시타’와 가족들의 마법의 힘이 점점 사라지는 위험에 처했어요. 아무 마법 능력이 없는 ‘미라벨’은 이 가족과 ‘엔칸토’의 희망의 불꽃을 되살리기 위해 나서게 된답니다. 과연 ‘미라벨’은 ‘마드리갈’ .. 2022. 9. 23.
D-6 합리적 소비와 궁상의 한 끗 차이 처가 외할머니와의 눈물 나는 이별을 마치고 가족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왔다. 지난주 내내 짐을 빼고 가구를 드러낸 탓에 홈 스위트 홈 같은 느낌은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여기저기 쌓인 짐들은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이번 고향 방문 간에 갑자기 나한테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났다. 미국 가면 의료보험이 부담스러운 탓에 건강 검진을 거의 다 받고 특별한 문제도 없었는데, 갑자기 두드러기가 올라와 괜히 처 외할머니와 가족들 모두 걱정을 끼쳐 버렸다.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내 알레르기 검사부터 예약을 잡았다. 이런 부분조차 아내와 나의 성향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아내는 아프면 바로 병원에 간다.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병원에서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어야만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아파서 견딜 수 없을 때 병원.. 2022. 9. 23.
처음엔 막연하게 망상했다 ‘그래, 가자. 이제는 정말 가자.’ 여기서 죽도록 살기 싫은 것도 아니었다. 막연한 동경에 빠져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좀 늦긴 했지만 직장에서 자리도 잘 잡았고, 이제는 진짜 올라갈 일만 남았다. 정말 지옥 같았던 육칠 년이 지나고 나니, 이제는 조금씩 행복이 느껴지는 삶을 살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오히려 해외로 나가게 되면 고생길이라는 것도 알았다. 난 이십 대 후반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상태로 유학생활을 했고, 젊은이의 낭만으로 그 시절을 버텼을 뿐 절대 쉬운 생활이 아녔다. 지금 가게 되면 그때와 다름없는 여러 문제를 떠안은 채 책임질 식구는 더 늘게 된다. 직장을 바라고 가는 것도 아니다. 지출에 대한 대강의 계획이 있기는 하지만, 백 프로는 아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지 .. 2022. 9. 23.
다 큰 어른 남자가 어린이 콘텐츠를 리뷰하는 이유 안녕하세요? 제이콥 와이입니다. 어렸을 때 시간에 맞춰 티브이 앞에 모여 좋아하는 만화영화를 기다리던 경험, 모두 있으시죠? 6시만 되면 시간표에 맞춰 방영하는 애니메이션을 보기 위해, 친구들과 놀다가도 집으로 달려가던 경험 모두 있으실 텐데요. 항상 그 시간에만 방영하니, 놓치지 않기 위해 밥 먹는 것도 잊었다가 부모님께 혼났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비디오 가게에서 좋아하는 만화영화를 빌려오던 기억도 있으실 거예요. 인기 있는 시리즈 작품을 보기 위해, 매일매일 비디오 가게에서 진을 치고 있던 기억도 나네요. 저희가 어렸을 적엔, 어린이가 볼 수 있는 만화영화가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3개밖에 되지 않는 티브이 채널에서는 정해진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만화영화를 방영했고, 비디오 가게의 만화영화들은 그 .. 2022. 9. 22.
애들 만화 만드는 것, 쉽지 않아요 4년 전쯤으로 기억하는데요, 팀에서 새로 제작하는 유아용 애니메이션이 지방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제작하게 되었는데, 이를 위해 지원작 평가를 위한 프리젠테이션이 열렸습니다. 제가 진행하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프리젠테이션 지원을 위해 참석하게 되었어요. 아직은 한참 제작이 진행 중이어서 메인 프로듀서님을 제외하고는 참석이 어려워, 제가 함께 참석했던 것이었죠. 프레젠테이션을 모두 마치고 난 후, 평가위원님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게 되었는데요, 한 위원님께서 저희 작품의 제작비가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을 하셨습니다. 유아용 작품인데, 퀄리티에 비해 제작 단가가 너무 높지 않나요? 또 제작 기간은 왜 이렇게 길죠? 저희는 이 작품이 가지는 기술적, 시각적 성과를 거두기 위해 많은 기술 개발이 필요했던 점과, 우.. 2022. 9. 22.
D-7 헤어짐을 슬퍼하는 가족과 도리를 강요하는 가족 이제 미국으로 떠나는 날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 가족이 어떻게 미국에 가게 되었는지는 다른 글 카테고리 “와이프 따라 미국 간 남편”에서 보는 것으로 하시고, 이 매거진에는 실시간으로 우리 가족과 나에게 벌어지는 실시간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지난주 불꽃같고 전쟁 같았던 비자 인터뷰가 끝나자, 갑자기 미국 출국일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한 한 달 반 여 전이 구매한 미국행 비행기는 8월 1일! 5월 말에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에 출국할 준비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조금 못되었고, 정확히 두 달이 되는 날, 미국으로 출국한다. 이젠 준비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여기에 남겨놓고 가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모든 걸 다 갖고 가거나, 아니면 다 버리고 가야 한다. 그래서 지난 수요일 이후 주말까지 집을 .. 2022. 9. 22.
그녀가 합격을 했다 ‘자기야.’ ‘응?’ ‘나, 붙었나 봐.’ ‘응?’ 집안일을 모두 마친 뒤, 아내는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며 휴대폰의 이메일을 정리하고 있었고, 난 그 옆의 실내 자전거에 올라 운동을 하고 있었다. ‘ㅇㅇ 대학교의 박사과정 담당자인데 축하한다는데?’ 아내가 조금 멍한 말투로 말한다. 나의 반응 또한 굼뜨다. ‘... 응?’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평일 저녁 시간에 아내는 덜커덕 합격 메일을 확인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계속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몇몇 학교에서의 리젝션 메일에 속상했던 일이 불과 며칠 전이었는데. 그럼에도 뭔가 초 현실적인 상황이었다. ‘이거 아무래도 스팸인 것 같아.’ 얼마나 초 현실적이었으면 아내는 그렇게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메일에 몇 문장 없었다. 대.. 2022. 9.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