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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00 너의 목소리가 안 들려

by jcob why 2023.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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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산다고 해도 한국에서의 삶과 다른 부분은 거의 없다. 회사라도 다니고 학교라도 다니면 사람도 만나고 하니까 다른 부분이 있을 텐데, 주부인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기 때문에 미국임을 잘 느끼지 못한다. 환경적인 차이를 느끼기는 하지만, 그건 한국과 미국의 차이라기보다는 도시와 시골의 차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서부에 있을 땐 도심과 도심외곽(suburban) 지역의 느낌 차이가 크지 않았는데, (내가 살던 곳 한정이다) 지금 이곳은 도심 외곽의 모습이 거의 시골이다. 물론 도심도 읍내 느낌 정도기는 하지만. 내가 느끼는 삶의 차이는 딱 그 정도다. 이건 나라가 바뀌었다고 느끼는 부분이 아니다.

보통 영미권 국가로 이주하게 되면, 생활에서 가장 큰 차이와 고민을 만드는 부분은 영어 소통이다. 아무래도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면 기본적인 생활이 어려우니까. 하지만 말했듯 대부분 집에 있으니 영어를 쓸 일이 없다. 혹여 장을 보거나 생필품을 사러 나가도, 점원들과 대화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거기에 비대면 결제도 많이 활성화돼서 심지어 점원을 보지 않고도 마트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영어를 잘 못하는 게 불편하지 않은 건 아니다. 홀로 집을 지키는 생활을 해도 생각보다 소통할 일이 많다. 단순히 말이 통하지 않는 게 문제의 끝이 아니다. 경험해 보면 알겠지만, 만나서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은 영어를 잘 못해도 생각보다 소통에 많은 방해가 되지 않는다. 몸짓 발짓도 있고, 표정도 있고, 소통할 도구가 많다. 하지만 우편이나 학교 유인물, 혹은 아내 텍스 보고서와 같은 텍스트는 내용 인식을 하는데 한참이 걸린다. 전화 통화를 통해 고객센터나, 병원 예약을 할 때 전화통화를 할 때는 정말 뭔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을 때가 많다. 주기적으로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매번 다른 소통해야 할 일들이 계속 벌어지는 통에 긴장의 연속이다.

그전에 대학원 유학을 하면서 미국에 6년이나 살았기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들어야 하는 말을 알아듣는 것은 크게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가능하다는 의미일 뿐, 거의 듣기 평가, 말하기 평가 수준이다. 열심히 들어야 알아듣고, 원하는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려야 한다. 텍스트는 더 쉽지 않다. 아이의 가정통신문을 이해하기 위해, 토익 토플 수준의 영어 독해를 매일 여러 번 반복해야 한다. 이는 소통의 반응속도를 느리게 하고, 답답함을 유발한다. 주토피아의 플래시(나무늘보)가 된 느낌이다.

이는 비단 필수 의사소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티브이를 보면 아내보다 웃거나 놀라는 반응 속도가 느리다. (아내는 나보다 영어를 잘한다) 가끔 뉴스를 틀어 놓는데 최선을 다해 집중하고 있지 않으면, 완전히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유일하게 매일 만나는 미국인 스쿨가드 조이와의 대화에선 약간만 놓치거나 정신줄을 놓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다. 특히나 미국식 리액션에 일가견이 있는 나나 아내에게 조이는 천천히 말하거나 쉬운 단어로 말하는 수고 없이 다다다다 이야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때 멍해지지 않고, 눈치껏 긍정도 부정도 아닌, 좋고 나쁜 것도 아닌, 하지만 말하는 사람의 흥을 꺼뜨리지 않는 적절한 리액션이 필수다.

이렇듯 눈치만 조금씩 늘어가고, 정확한 정보의 습득의 속도는 오히려 느려진다. 결과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정보나 대화에 대해서는 과감히 정확한 이해를 포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해 이해해 보려고 하는데, 금방 집중력을 잃곤 한다. 6년을 살아도 이 정돈데, 몇 년을 더 산다고 나아질까 싶다.

오늘도 조이는 자신 이웃집과의 갈등 이야기를 해 주는데, 잘 따라가다가 구체적인 내용에 들어가자 맥락을 완전히 놓쳐 버렸다. 대강의 내용은, 아들이 그 집 사람들의 어떤 부분을 싫어한다는 거였고, 자신도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 잘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러면서 나의 동의를 구하는 건 덤이다) 또 이웃끼리는 어느 정도 용인해야 하지 않겠냐며, 그런데 또 자기네 집 강아지는 그 이웃과 사이가 안 좋을 것을 귀신같이 알아서, 그 집 사람들만 오가면 미친 듯이 짖는다는 내용이었다. 말했듯, 나에게 이웃의 나쁜 부분이 정말 나쁘지 않냐는 듯 동의를 구하는데, 뭔 내용인지 알아야 말이지. 난 그저 나의 긍정과 부정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네가 많이 힘들었겠구나’ 정도로 반응하고 넘어간다. 눈치만 는다.

한국에서 문해력이 너무 떨어지거나,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을 정말 싫어했다. ‘센스’가 부족한 사람은 도태된다는 게 내 믿음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어떤 소통에서든 (그게 말하기든 듣기든 쓰기든 읽기든) 전체의 6~70% 수준에 머무니, 내 행동이 마치 말귀를 잘 못 알아듣거나 문해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의 행동이 되어버린다는 생각이 들어 자괴감이 든다.

문제는 회사에 다닐 때보다 영어를 더 안 쓴다는 점이다. 난 애니메이션 피디였으니까, 영어 더빙 검토를 할 때가 아니면 영어를 쓸 일이 아예 없었다. 입을 뗄 일이 없다. 영어가 늘 리가 있나. 아, 요새 chatGPT를 쓰면서 영어가 느는 건 있다. 얘가 영어를 더 잘 알아 들어서.

일상에서 조금만 더 불편함 없이 소통했으면 좋겠다. 영어 때문에 되물어야 하거나,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한 채 넘어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물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그날이 올까 싶기는 하다.

Photo by Jon Tys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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