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디디를 입양하고 보호소에 디디를 남겨둔 채 집으로 온 뒤로, 아이는 어서 빨리 디디를 데리고 오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기쁘고 설레 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기쁘기도 했지만, 데리고 올 방법도 없는데 계속 징징대기만 하니 이런 것만큼 힘든 것도 없다. 특히 딱히 내가 해줄 수 있는 방법도 없는데, 보고 싶다, 빨리 데리고 오고 싶다, 이런 말만 5초에 한 번씩 반복하고 있는 아이를 보자면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차라리 잊고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 시간이 더 빨리 올 텐데 하면서 말이다.
특히 이번 주 월요일 화요일은 학부모 상담 기간으로 아이가 학교를 가지 않아, 아이의 징징거림은 그 강도를 더해 간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모처럼 학교를 가지 않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기간인데, 디디는 학교를 가기 바로 전 날인 화요일에나 집에 온다고 하니, 그 애가 얼마나 타겠는가?
그런데 아이의 바람이 통했던 것일까? 오전에 상담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유기견 보호소였다. 디디가 중성화 수술을 잘 받았는데, 오늘 오후에 데려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은 가족과 상의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뭐 사실, 상의할 것도 없었다. 아이는 당연 지금 당장이라도 데려오고 싶어 했고, 아내도 그게 좋겠다고 했다. 그저 나의 마음만 아직 준비가 안 되었을 뿐이다.
아이의 흥분은 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거의 하늘을 날고 있다고 해야 할까? 이제 겨우 열한 시에 학교에 가서 학부모 상담도 해야 하고, 다시 집에 돌아왔다가 한참 후에 데리러 가야 할 텐데 아이의 흥분을 가라앉히기가 어려웠다. 아내는 쉬는 날이 아니어서 학부모 상담과 디디 픽업 시간 사이에 줌으로 콘퍼런스 하나도 참석해야 했다. 지금부터 저렇게 흥분해 있으면 정말 힘들 텐데, 걱정이 앞섰다.
사실 아이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표현할 뿐인데, 왜 그렇게 그 흥분을 가라앉히려 하는지 스스로도 잘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 가장 합리적인 이유는 너무 흥분해서 과격한 행동을 하다가 실수하거나 다치는 것을 막는다는 이유 정도다. 하지만, 아이도 이제 열 살이고,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있는 나이도 되었다. 조금 흥분한다고 큰 사고가 나지는 않을 거라는 것, 나도 알고 있다.
아무래도 어렸을 적부터 받아온 교육 때문에 그런 감정을 통제하도록 가르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전화위복, 새옹지마, 나쁜 일 뒤엔 좋은 일이 오고, 좋은 일 뒤엔 나쁜 일이 온다, 마치 인생의 법칙인 것처럼, 그래서 마음가짐을 조심해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배워왔다. 하지만, 인생을 살면서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스스로 배웠다. 나쁜 일은 꼬리의 꼬리를 물기도 하고, 좋은 일들은 연달아 발생한다. 내가 어떤 자세로 맞이하는가와 전혀 관계없이 나쁜 일도 오고, 좋은 일도 온다. 하지만, 나는 그 어렸을 적의 강압적으로 주입된 교육 때문에, 나쁜 일이 생겨도 온전히 슬퍼하지 못하고, 좋은 일이 생겨도 기뻐하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우리 윗세대에게 배웠던 것처럼 내 아이에게도 그런 감정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와 아내가 정말 싫어하는 소설(?)이 있는데 그건 바로 ‘운수 좋은 날’이다. 스토리조차 언급하기 싫을 정도로 이 이야기의 내용을 싫어한다. 국어(혹은 문학) 교과서에 이 이야기를 넣은 결정권자를 증오할 정도다. 덕분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야말로 ‘운수 좋은 날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기면, 그것도 연달아 생기면 불안함이 앞선다. 그 화를 앞두고 있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좋은 일, 기쁜 일이 생겨도 마음껏 즐기지 못한다. 남이 좋은 일에 기뻐하면, ‘저거 저러다 큰코다치지’ 이런다.
나도 ‘운수 좋은 날 증후군’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다. 좋은 일이 생기면 불안하다. 아이가 너무 설레 하면 일단 진정시키는데 여념이 없다. 실망이 클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랬다. 원래 월요일은 보호소가 문을 열지 않는 날이라고 했다. 그래서 화요일에 픽업하기로 했던 거였는데, 전화가 와서 오늘 픽업할 수 있다는 말에 너무 기뻐서 제대로 확인을 하지 못했다. 다시 전화를 해도 응답기만 받았다. 혹시 허탕 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분명 전화 통화도 했고 영어도 다 알아 들었건만, 모든 것이 다 가짜인 듯했다. 그래서 더 아이를 진정시키고자 했다.
약속한 시간이 되고 보호소에 도착했는데, 역시 문이 잠겨 있었다. 불안감이 증폭되는데, 문 옆에 작은 인터콤이 있어서 벨을 눌렀다. 보호소 안의 동물 병원으로 연결되는 인터콤이었다. 드루(디디)를 픽업하러 왔다고 하자 친절하게 문을 열어주었다. 아내와 나, 아이까지 한숨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다시 디디를 만났다. 중성화 수술을 마친 직후여서 사실 콘을 끼고 있어야 하는데, 수의사가 정말 싫어해서 끼지 못했다고 한다. 수술 부위를 건드리지 않도록 잘 봐주고, 불안하면 펫 샵에서 도넛 모양의 쿠션을 사서 끼워주면 안전하다고 한다. 그 외에도 여러 주의사항들을 듣고, 진통제 약을 받고, 디디와 함께 보호소를 나섰다.
디디를 데리고 보호소를 나오자 보호소 스태프 한 명이 다른 유기견을 산책시키고 있었다. 드루(디디)를 알아보고 인사를 해주고 축하해 주었다. 보호소의 스태프나 봉사자들이 사랑으로 잘 돌보고 관리해서 입양을 보내는 것처럼 보여서 좋았다. 딸아이는 이런 보호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는지, 지갑에 용돈을 꺼내 기부함에 넣기까지 했다. 아주 훈훈한 모습이다.
집까지 20여분의 시간 동안 켄넬 없이 차를 타야 했는데, 디디는 조금 긴장한 듯했지만, 얌전하게 뒷좌석에 잘 앉아서 집까지 왔다.
10여 년만에 집에 새로운 식구가 생겼다. 아내와 결혼하고 처음 신혼집에 들어섰을 때, 처음 딸아이를 안고 집에 들어왔을 때가 떠오른다. 그때만큼 인생의 새로운 챕터가 시작된다는 느낌이다. 디디에게도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 생겼고, 설레는 마음이 딸아이뿐 아니라 온 가족에게 모두 가득하다. 마음껏 기뻐하자. 좋은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 것이다.
Photo by Maria João Correia on Unsplash
'나는 미국에 산다! > 주부 남편 아빠 미국 정착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D+105 나이 많은 세탁기와 건조기 (0) | 2022.12.01 |
---|---|
D+100 100일간의 미국 정착, 우리는 정착했을까? (0) | 2022.12.01 |
D+96 새로운 가족을 만나러 갑니다 (0) | 2022.11.28 |
D+89 내 헤어 디자이너는 미국 대학원생 (0) | 2022.11.27 |
D+86 아이와 박물관 가는 돈이 그리 아깝더냐? (1) | 2022.11.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