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올해 4학년이 되면서 금방 학교에 적응했다. 팬데믹 때문에 2학년 때 전학 온 학교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전면 등교가 시작되고 본격적으로 친구들을 만나 사귀기 시작하니까 적응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였다. 게다가 이런 적응의 문제는 비단 전학생의 문제만은 아니어서 아이에게 적응에 특별히 불리할 것도 없었다. 원래 학교를 다니고 있던 자기들끼리도 서로 잘 모르니까 말이다.
그런데 한 학기만에 우리 아이는 그렇게 잘 적응한 학교를 뒤로 하고 미국으로 떠나야 했다. 아이는 많이 내색은 안 했지만 상실감이나 실망감이 굉장히 커 보였다. 미국에 가는 것이 자신에게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고 느끼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돌이 지난 직후 한국으로 돌아왔기에 미국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아무것도 없다. 그저 미지의 세계이고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다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아내와 나는 아이에게 ‘미국에 가면 좋을 만한 것들’을 선사해야 했다. 오랜 고심 끝에 생각해 낸 두 가지 ‘미국에 가면 좋을 만한 것들’이, 하나는 ‘주택에 살기’, 다른 하나는 ‘강아지 기르기’였다.
‘ㅇㅇ아, 우리 미국에 가면 강아지 기를 거야.’
‘정말?’
강아지를 기르는 것은 아이의 오랜 희망사항이었다. 하지만 아파트 세살이를 하는 입장에서 강아지를 기르기는 쉽지 않았다. 집을 조금 넓혔던 지난 이사 때 강아지 기르기를 시도하려고 했지만, 집주인이 제시한 계약서 특약에 반려동물 금지가 떡하니 있었던 지라,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미국에 가면 강아지를 기를 수 있겠다 싶었다. 렌트로 산다고 해도 주택에 사는 경우가 많고, 아파트에서도 강아지를 기르게 해주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아이 정서 발달을 위해서도 반려견을 기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왔기에 강아지를 기르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약속은 효과가 정말 좋아서, 아이는 그 약속 이후 다행히도 미국에 가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고 기대하기 시작했다.
미국에 잘 왔지만 바로 강아지를 입양할 수는 없었다. 이주 후 우리도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기에, 당장 강아지를 입양하는 것은 조금 미루었다. 아내도 아이도 학교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조금 서운해 하기는 했지만, 해를 넘기지 않기로 약속하고 미국 생활에 적응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렇게 3개월이 흘렀다. 아내가 가을 방학을 하고 아이도 학년도의 첫 번째 쿼터가 끝났다. 둘 다 나름 각자의 일상에 적응이 어느 정도 됐다고 생각해, 함께 지낼 반려견을 찾아보기로 했다. 아이는 뛸 듯이 기뻐했다.
가급적이면 유기견 보호소에서 반려견을 구하기로 하고 검색을 시작했다. 평소에 동물 복지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던 아내는 구매보다는 유기견 입양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고, 나도 이에 동의했다. 알아보니까 미국에서는 유기견 입양도 하지만, 특정 견종을 분양하는 것도 많이 하는 것으로 보였다. 서양에서는 무조건 유기견 입양만 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미국은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유기견 보호소는 인터넷으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웹사이트를 통해 현재 보호하고 있는 강아지의 정보를 손쉽게 검색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보호하고 있는 견종이 대부분은 대형견이었다. 핏불이나 테리어 같은 대형견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구조되는 견종이 대부분은 대형견인 것으로 보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대형견을 키울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대형견을 아파트에서 키우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 소형견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적당한 아이를 찾기 어려워 보였다.
그래도 여러 보호소의 웹사이트 업데이트 속도는 매우 신속하고 빠른 편이어서, 적당한 강아지들이 있는지 검색하기가 용이했다. 그리고 어제저녁, 집에서 가까운 보호소에 소형견 한 마리가 새로 업데이트되었고, 우리 가족은 그 강아지를 보러 보호소를 방문하기로 했다.
보호소를 향하는 내내, 아이는 강아지를 키운다는 생각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나와 아내는 혹시나 적당한 강아지를 찾지 못하면 그냥 돌아와야 할 수도 있으니 너무 기대하지는 말라며 아이를 진정시켜야 했다. 미국에서는 이런 곳에 한 번 가면 여러 절차와 서류 작업 등으로 두세 시간이 훌쩍 가곤 한다. 그래서 보호소 여러 곳을 방문하면서 강아지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오늘은 이 보호소 한 곳만 방문하기로 했고, 만약 적당한 강아지가 없다면 아쉽지만 그냥 집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아내와 나는 강아지를 입양하는데, 한 달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딱 적당한 강아지를 찾는 작업은 정말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견종이나 사이즈 같은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마음으로 교감할 수 있는 강아지를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한 번 입양하면 오랜 기간 가족으로 함께 보내게 될 텐데, 서로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입양하고 싶었다.
마침내 보호소에 도착했고, 입양을 위해 접수를 했다. 모든 강아지들을 볼 수는 없고 서류를 보고 마음에 드는 강아지를 선택하면 그 강아지만 데리고 나와 만나게 해 준다고 한다. 나는 먼저 웹사이트에서 보았던 강아지를 보고 싶다고 했는데, 아쉽게도 그 강아지는 우리보다 앞서 온 한 여자분이 입양 수속을 하고 계셨다. 그러고 보니, 사진에서 보았던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이미 나와 있었다.
아이는 아쉬워하면서 다른 강아지도 보기로 했다. 리스트에는 소형견은 아니지만 제법 귀엽고 선한 인상을 가진 아이가 하나 있었다. 이름은 드루, 까만 털에 옅은 갈색 반점이 귀여운 믹스드 강아지였다. 체중은 11~2 킬로그램 정도로 아파트에서 키우기에 부담스럽지는 않아 보였다. 그래서 직원에게 이 강아지를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는 조금은 작은, 하지만 강아지가 사람과 교감할 수 있는 크기 정도는 되는 작은 방에서 드루를 기다렸다. 그리고 한 이삼 분 기다렸을까? 직원이 드루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나와 아내, 아이는 잔뜩 긴장해서 드루를 맞이했다. 생각보다 아담한 크기의 중형견으로, 순해 보이는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드루는 조심스레 들어와서는 우리 가족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쳤다. 이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어서, 아내는 그 모습에 눈물까지 흘렸다. 보호소에 도착하기 전 기대했던 ‘교감할 수 있는 강아지’가 바로 이 아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대번에 바로 우리의 가족이 될 거란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세 명 모두 드루를 마음에 들어 했고,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아쉽게도 바로 집으로 데려갈 수는 없었다. 아직 중성화 수술을 안 한 상태라 중성화 수술을 마쳐야만 집으로 데려갈 수 있다고 한다. 다음 주 화요일에 데려가기로 하고 입양 수속 서류를 작성했다. 서류 작업이 많이 복잡하지는 않았다. 보호소와 입양 계약을 하고, 비용(도네이션)을 지불하고, 카운티에 제출할 라이선스 신청서를 작성했다. 반려견을 키우려면 카운티에서 라이선스를 발급받아야 한다고 한다. 비용은 1년에 7불 정도로 비싸지는 않았다.
우리 가족은 드루와 다음 주 화요일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보호소를 나섰다. 셋 다 같은 마음이었다. 너무 좋은 반려견을 만나게 된 것 같아 감사했다. 아이는 드루에게 우리 가족이 부를 새 이름을 지어줬다. ‘다크 드래건’이라는 이름을 줄여서 ‘디디’로 부르기로 했다. 아이가 붙인 새 이름도 찰떡이라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 검색해 보니 미니핀이나 저먼 핀셔 베이스의 믹스드 견인 것 같았다. 미니핀보단 크고 저먼 핀셔보다는 작았다.
미국에 온 지 100일이 되기 전에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게 되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어서 화요일이 왔으면 좋겠다.
Photo by Karolina Wv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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