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학사 일정은 한국과 달라 적응이 필요한 부분이 몇 가지 있다. 9월에 시작하는 학년이 가장 대표적이고, 거의 의미가 없이 짧은 겨울 방학도 적응하기가 어렵다. 그런 학사 일정 중에서 또 적응하기 어려운 것 중에 하나가 스프링 브레이크다. 스프링 브레이크는 한국말로 직역하면 봄방학이다. 그런데 이 봄방학이 한국에서의 봄방학과는 차이가 있다.
학창 시절, 겨울 방학이 끝나고 나면, 2월 초에 의미 없는 등교를 2~3주 했었다. 수업의 진도를 나가는 것도 아니고, 시험을 보거나 중요한 과제를 하는 등의 대단한 학사 일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해는 지났는데, 아직 학년은 전년도의 학년이다. 나이는 먹었는데, 아직 학년은 그대로인 아주 이상한 상태. (물론 이런 건 이제 만 나이 정착으로 없어진다고는 한다) 그리고는 불과 몇 주 만에 봄방학을 시작한다. 물론 그 기간은 2~3주로 짧지만, 또다시 방학이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봄방학은 그저 신나는 방학이었다. 그 넘치고 넘치는 방학 숙제가 없었다. 비록 2~3주로 짧아 아쉽기는 했어도, 겨울방학 내 장착한 ‘게으름의 기술’을 조금 더 연장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고, 특별히 부담 가는 것이 없어서 진정한 잉여 기간(?)처럼 느껴지는 것이 좋았다. 새 학년에 대한 설렘이 가득했던 것은 덤이다. 중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조금씩 입시의 압박감이 전해지던 기간이었다. 봄방학만 되면 학원에서 새 학년 선행학습을 위한 특강이 개설되고, 봄방학식날 담임이 하는 단골 레퍼토리는;
‘너희 더 이상 중(고) 1(2 or 3)이 아냐. 정신 똑바로 차리고 공부해야 해!’
이게 내가 경험한 봄방학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학사 일정이 개편되면서, 내 아이가 학교에 들어갔을 때에는 더 이상 봄방학이 없었다. (물론 학교나 학군에 따라 다르다고는 한다) 아주 긴 겨울 방학이 있을 뿐이었다.
미국의 초등학교는 봄방학이 있다.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저 일주일이다. 시기적으로 이스터(부활절)를 앞두거나 그 근방의 시간에 한다. 대학원 때는 늘 미드텀(중간고사) 직후 였는데, 초등학교는 시험이 있는 것은 아니니 딱히 학사 일정과 맞춘 것도 아닌 것 같다. (아이의 이번 학년 세 번째 쿼터 성적은 약 한 달 전에 나왔다)
어쨌든 일주일간 아이는 방학이다.
날씨는 좋아지고 온 천지에 꽃피고 새싹이 나는 생명의 계절, 아이가 일주일간 학교에 가지 않으니 산으로 들로 나가야겠는데, 그래서 여행도 좀 가고 멀리 콧바람도 쐬고 하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다. 아내의 봄방학은 약 한 달 전이었다. (아니 왜 학교마다 봄방학 기간이 다 다른 거냐고!) 아내가 학교에 가고 또 픽업도 가야 하니, 어디 멀리 나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거기에 날씨도 도와주지 않는다. 20도가 넘는 일교차와 뜨거운 햇살과 폭우를 교차하는 통에 뭔가 일정을 계획하기가 어렵다. 물론 거기에 내가 집돌이인 것은 덤이다.
그래서 지난 주말, 정기 바자회에 가서 봄방학 때 할 과학 교보재를 몇 가지 샀다. 하나는 태양광으로 작동하는 로봇 프라모델, 다른 하나는 베이킹 소다와 식초만으로 날리는 로켓이다. 아이나 나나 워낙 집돌이 집순이라, 나가자고 나가자고 들들 볶는 것보단 집에서 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낼 것들을 찾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프라모델 조립을 하니까 처음 하는 것이어서 그랬는지 두세 시간은 훅 지나갔다.
하루는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갔다. 이번 시즌 기대작인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다. (리뷰는 여기에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의 절친과 함께 갔다. 오늘은 내가 두 아이의 보호자다. 엄청난 크기의 케틀콘(캐러멜 팝콘)도 사고,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가 영화관을 조금 무서워하는 편이어서 미국에서는 극장에 처음 왔는데, 친구랑 오기도 했고 이미 알고 있는 캐릭터와 세계관인 작품이 보게 되어서 그런지 덜 긴장한 듯했다. 미국에서 어린이 영화를 보러 가면 엄청 왁자지껄한 편이다. 캐릭터 티셔츠를 입거나 코스프레를 하고 오는 아이도 있고, 장난감을 들고 오기도 한다. 딸아이의 친구도 직접 종이로 마리오 모자와 콧수염을 만들어 붙이고 왔다. 내 생각보다는 조용했지만, 그래도 영화 한 편을 즐기는 아이들의 분위기가 밝고 경쾌해서 좋았다.
그리고 주말은 이스터였다. 부활절이다. 한국에서의 부활절은 성당과 교회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념일이지만, 미국에서는 종교적 색채가 많이 옅어진 또 다른 4월의 홀리데이다. 부활절 달걀과 토끼로 상징되는데, 토끼는 생명력과 번식력, 달걀도 그 생명력 때문에 부활절의 상징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가장 큰 아이들의 행사는 이스터 에그 헌팅이다. 공원이나 뒤뜰에 달걀(혹은 달걀 모양의 간식)을 숨겨놓고 보물찾기 하듯 아이들이 찾게 하는 행사다. 우리 가족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크게 이스터 에그 헌팅 행사를 했다. 요즘은 이스터에도 진짜 달걀은 거의 쓰지 않고 달걀 모양의 케이스에 캔디(라 쓰지만 거의 100% 초콜릿이다)를 넣어 숨겨 놓는다. 재미있었던 것은, 교회의 중고등부 친구들이 유년부 아이들을 위해 교회 마당에 이스터 에그를 숨겨놓고 그 후에 유년부 아이들이 찾았는데, 그런 과정이 어찌나 재미있었는지 누가 어디에 숨겨서 고생이었다든지, 너무 쉽게 숨겨 놔서 자존심이 상했다든지, 계속 이야기를 읊어댄다.
그렇게 일주일을 지냈다. 봄방학. 진짜 추운 겨울이 이제야 가고 봄이 왔다는 것을 느낀다. 생명력 넘치는 날씨에 생명력 넘치는 아이의 활동. 덕분에 난 녹초가 됐다. 장장 12주에 걸친 아이의 여름 방학이 새삼 걱정된다. 지금까지 등록한 아이의 활동은 고작 학교에서의 2주 동안 반나절 진행하는 섬머 캠프와 YMCA 1주 종일반 캠프가 다다. 아내는 여름 방학 때도 계속 학교가 바쁠 예정이라는데… 뭔가 더 활동이 필요하다.
Photo by Євгенія Височина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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