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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에 산다!/와이프 따라 미국 가는 남자 120

재택 GRE/토플 시험기, 나 말고 내 아내 ‘다음 주 토요일?’ ‘응, 화이트보드 하고 세필 보드마카 만 준비하면 된대.’ ‘집에서 시험 보는 거… 괜찮을까?’ ‘안 괜찮을게 뭐가 있어? 참 걱정을 사서 하네.’ 유학을 내가 가는 게 아니니까, 당연히 토플과 GRE의 일화도 나의 체험담은 아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GRE든 토플이든 절대 다시 시험을 보고 싶지는 않다. 십수 년 전, (나의 유학생 시절은 몽땅 다 십수 년 전이구나) ETS에서 보는 모든 시험들이 컴퓨터로 보는 시험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그래도 시험장에 가서 시험을 봐야 하는 건 다르지 않았다. 나도 어학연수를 하면서 대학원 입시를 할 때 토플을 보려고 근처 시험장을 찾다 실패해 딴 도시까지 가서 시험을 보고 그랬으니까. 하지만 팬데믹이 정말 많은 문화를 바꾸었다. ETS가.. 2022. 10. 5.
아내의 학교 선택 ‘거긴 싫어.’ ‘왜?’ ‘미드 ㅇㅇㅇ에서 악당 ㅁㅁ이 거기서 살았대.’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유학원에서 본인의 과가 있는 다양한 학교를 보내주었다며, 아내는 나에게 해당 이메일을 포워드 해 주었고, 나는 메일의 리스트를 보면서 가면 좋을 것 같은 학교들을 선정해서 아내에게 추천해 주었다. 그런데 다짜고짜 돌아온 대답은 위와 같았다. 이보세요. 그 학교가 얼마나 전도유망한 학교인지 아세요? 앞선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아내는 심각한 길치이자 방향치이다. 아내가 길치인 것은 학생 시절 지리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단 점에 기인한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 아는 어렸을 적부터 사회과 과목에 대한 관심이 많고, 특히 한국 지리, 세계 지리에 대한 관심이 많아, 이런저런 정보들을 찾아보고 알게 되는 것을 즐.. 2022. 10. 4.
아내의 신박한 영단어 공부법 ‘몇 신데 아직도 일해?’ 늦은 밤, 아이를 재우고 나서 주방에 오니, 아내가 노트북을 켜놓고 뭔가를 열심히 정리하고 있다. 나한테는 그렇게 칼퇴근을 강조하는 그녀가 이 늦은 시간까지 일한다는 생각에 빽 신경질을 낼 참이었다. ‘단어장.’ 아, 공부하는 중이구나. 유학 준비 중이니까. 그런데 엑셀이다. 누가 보면 아마도 회사 업무를 정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거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유학 준비를 시작한 아내는 토플과 GRE 시험을 봐야 했다. 꽤나 까다로운 시험이긴 하지만, 아내에게 힘든 과정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GRE야 대학원 입학시험이니까 그렇다고 해도, 호주 유학 경험에 외국계 회사를 꽤 오랫동안 다닌 그녀가 영어 공부를 빡세게 할 이유는 전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뭘 .. 2022. 10. 3.
유학 준비생/직장인/엄마의 하루 유학 준비생/재택 직장인/아내/엄마의 삶은 고달프다. 그녀의 하루를 읊자면 이런 식이다. 아침에 비몽사몽 깨서 아이의 등교와 자신의 출근 준비를 해서 아이와 집을 나선다. 운전을 못하는 아내는 아이와 십오 분 등굣길을 함께 걷는다. 가까스로 아이를 학교에 들여보내고, 가까운 스터디 카페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침 아홉 시 화상 미팅을 맞추려면 집까지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스터디 카페 회의실을 예약하고 가까스로 화상 미팅에 들어가면서 오전 업무를 시작한다. 점심시간 따위는 사치다. 한 시 즈음해서 하교하는 아이를 픽업해 집에 돌아오는 데만 삼십여 분이 소요된다. 등교는 지가 애가 닳아 걸음을 재촉해도, 하교 땐 세상 온갖 것에 관심을 베풀어야 한다. 집에 돌아오면 그 사이 챗으로 수많은 업무가 하달되어.. 2022. 9. 30.
아내, 유학을 위해 직장인이 되다 ‘ㅇ 팀장이 내가 다시 회사에 왔으면 좋겠대.’ ㅇ팀장은 아내가 전의 전에 다니던 회사의 팀장이다. ‘정말? 그런데 어떻게 다녀?’ 코시국의 한 복판, 난 재택을 하지 않는 회사에 다니는데, 아이는 학교에 거의 나가지 않았다. 아내는 유학 준비와 함께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우리는 아내가 다니던 회사와 더 멀리 이사까지 왔다. 출퇴근은 불가능했다. ‘재택이래. 나 그만두고 나서 계속 재택이었대.’ 응? 그래? 그러면 아이를 보면서도 일 할 수 있는 거야? 나는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아내는 그 직장에서 꽤나 인정받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그래서 회사 욕할 때마다 등장하는 몇몇 사람들이다) 아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아내가 더 좋은 .. 2022. 9. 29.
나 보다 어린 나이야 방송을 보다 보면 터무니없는 계기로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해 인생의 경로를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와~ 저 나이에 어떻게 저런 결정을 했대? 대단하다 야.’ 몇 번의 공부할 시기를 놓친 주인공들은 절체절명의 순간 결국 공부의 길로 가게 되었고,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공부의 길에서 여러 고생을 한 끝에 성취를 이루고 삶의 경지에 이른다. 그런 이야기를 읽거나 보거나 들으면, 거의 대부분은; ‘아, 참 대단한 사람이다.’ 하고 그냥 넘어가기 일쑤다. 그날도 비슷한 경우였다. 유명 엠씨가 진행하는 인터뷰 프로그램에서 한 저명한 인물이 출연했고, 뒤늦게 박사 과정을 하게 된 계기와 어려움들, 그리고 그 이후의 바뀐 삶에 대해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었다. ‘봐, 그러니까 우리도 지금 하면.. 2022. 9. 28.
유학 준비를 시작한 아내 아내는 21년 4월부터 유학 준비생이 되었다. 팬데믹으로 모든 움직임이 멈춰 있던 시기, 어쩌면 큰 도박이었다. 지금 준비하면 22년 가을에나 학교를 다니게 될 텐데. ‘그때 정도 되면 괜찮겠지. 그리고 지금은 다들 겁먹어서, 유학 같은 거 못해.’ 아내는 그때 코로나 때문에 1년 넘게 일을 쉬고 있었다. 아이가 1년 훌쩍 넘게 원격 수업을 하고 있고, 내 직장은 재택근무를 하지 않아 꼬박꼬박 출근을 해야 했다. 마침 이직한 회사에서 불만이 쌓여 있던 아내는 과감히 사직서를 던졌으나, 1년 가까운 경력 단절에 아내의 자존감은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네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을까? 내가 표현은 잘 못해주는 편이지만, 아내는 진정한 이 시대의 능력자다. 육아와 가사를 내가 같이(?.. 2022. 9. 27.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해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의 어느 봄날, 그렇게 떠나겠다는 원대한 꿈을 꾼 다음 날, 아내는 덜컥 유학원에 거액을 지불했다. ‘얼마라고?’ ‘ㅇ백만 원’ 원래의 나였다면 지불이 불가능한 금액이다. 그 돈을 내지 않아도 지원할 수 있는데. 그 돈 말고도 원서비가 얼마나 비싼데. 그 사람들이 합격시켜주는 것도 아닌데. 난 원래 그렇게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도와주는 사람에게 돈을 지불한다는 것, 납득이 되지 않았다. 사실, 도움을 받는다는 것 자체도 그다지 익숙하지 않았다. 나는 입시를 준비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했다. 학교에서는 한 계단이라도 높은 사다리의 대학을 보내기 위해, 나의 꿈과 진로 따윈 무시한 채 모 학과를 강요했고, 부모는 자신의 가업을 잇게 하기 위해, 문과인 나에게 모 .. 2022. 9. 24.
처음엔 막연하게 망상했다 ‘그래, 가자. 이제는 정말 가자.’ 여기서 죽도록 살기 싫은 것도 아니었다. 막연한 동경에 빠져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좀 늦긴 했지만 직장에서 자리도 잘 잡았고, 이제는 진짜 올라갈 일만 남았다. 정말 지옥 같았던 육칠 년이 지나고 나니, 이제는 조금씩 행복이 느껴지는 삶을 살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오히려 해외로 나가게 되면 고생길이라는 것도 알았다. 난 이십 대 후반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상태로 유학생활을 했고, 젊은이의 낭만으로 그 시절을 버텼을 뿐 절대 쉬운 생활이 아녔다. 지금 가게 되면 그때와 다름없는 여러 문제를 떠안은 채 책임질 식구는 더 늘게 된다. 직장을 바라고 가는 것도 아니다. 지출에 대한 대강의 계획이 있기는 하지만, 백 프로는 아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지 .. 2022. 9. 23.
그녀가 합격을 했다 ‘자기야.’ ‘응?’ ‘나, 붙었나 봐.’ ‘응?’ 집안일을 모두 마친 뒤, 아내는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며 휴대폰의 이메일을 정리하고 있었고, 난 그 옆의 실내 자전거에 올라 운동을 하고 있었다. ‘ㅇㅇ 대학교의 박사과정 담당자인데 축하한다는데?’ 아내가 조금 멍한 말투로 말한다. 나의 반응 또한 굼뜨다. ‘... 응?’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평일 저녁 시간에 아내는 덜커덕 합격 메일을 확인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계속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몇몇 학교에서의 리젝션 메일에 속상했던 일이 불과 며칠 전이었는데. 그럼에도 뭔가 초 현실적인 상황이었다. ‘이거 아무래도 스팸인 것 같아.’ 얼마나 초 현실적이었으면 아내는 그렇게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메일에 몇 문장 없었다. 대.. 2022.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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