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같은 아파트에 같은 학년 남자 친구 T도 처음 미국에 와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세 아이중 막내인 T는 저 멀리 유럽 마케도니아(그리스 위에 있는 북마케도니아 공화국)에서 온 친구로, 우리 아이와 같이 ESL 클래스를 같이 듣고 바로 옆반에 버스도 같이 타고 다녀서 금방 친해졌다.
T의 엄마 V는 처음 학교 버스를 태울 때 처음 만났는데, 두 아이가 같은 학년인걸 알고는 대뜸 내 전화번호를 받아 갔다. 나이는 한참 많아 보였지만, 키도 엄청 크고 언동 선수 출신 삘 나는 V의 포스는 장난이 아니었고, '와, 뭐 이런 친화력 갑인 사람이 있나' 생각했다. 번호는 가르쳐 줬어도 자주 연락이 오리라 생각하진 않았는데, 정말 하루 걸러 하루 연락이 왔다.
‘제이콥, 애들 숙제 어떻게 했어?’
‘제이콥, 시험 본 거는 어떻게 해야 해?’
뭔가 학교에서 숙제를 내주거나, 부모가 해야 할 일들이 있을 때 답답할 때면 나한테 연락을 했는데, 내가 아는 한 자세히 설명해 주려고 했지만 조금씩 부담스럽기도 했다. 나도 잘 모른다고! 영어로 설명하기도 쉽지 않은데 나한테 물어보니,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잘 몰랐다.
내가 아는 선에서는 도움을 주려고 애썼고 계속 연락은 주고받았지만, 그 이상 만나거나 더 가까워질 일은 없었는데, 아무래도 난 아빠고 V는 T의 엄마인 데다 T는 학교버스를 타러 늘 혼자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글에 등장했던 그 친구다)
그러던 어느 날 ESL 클래스에서 커리큘럼 나잇을 진행하는데 (또 다른 지난 글에서 참석했던 행사의 ESL버전이다) V가 차가 없다며 태워달라는 부탁을 했고, 나는 그날 아내와 같이 가기로 해서 V와 아내가 처음 만났다. 아무래도 엄마 대 엄마로 만나다 보니 나보다 훨씬 빨리 친해졌고, 그 뒤로 V는 나뿐만 아니라 아내에게도 꽤나 자주 연락을 해왔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 V가 우리 가족을 집에 초대했다. 난 지난 주가 꽤나 피로했던 한 주여서 집에서 좀 쉬고 싶었지만, 학교에서 빨리 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선 가야 한다며 나를 설득했고, 나는 하는 수 없이 아이와 아내와 같이 T의 집에 방문했다. 사실 애 아빠가 아이 학교 친구의 집에 방문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어서 너무 어색했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않은가.
T의 가족은 모두 다섯 명으로, 부부와 함께 세 아이가 있다. V의 남편은 원래 마케도니아에서 농구 코치를 했었는데, 지금은 V와 함께 미국의 운송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V의 남편은 키가 200cm로 엄청나게 컸다. 그 지역이 농구로 굉장히 유명한데, 혹시 과거에 국가대표는 아니었나 싶었다. (따로 물어보진 않았다) 우리 애 친구인 T난 형, 누나가 한 명씩 있었는데 형도 누나도 모두 농구 장학금으로 대학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역시 우월한 유전자인가? 둘 다 190이 넘는다고 하니, 대단한 것 같다.
한편 운동을 하는 식구가 집에 많아서 그런지 V의 성격이 엄청 괄괄했다. 전체적으로 풍기는 느낌이 우리 식빵 누나를 연상시켰다. T에게는 ‘확 주차뿔라’의 영어 버전 (I'm gonna kick ur butt)을 입에 달고 사는 데다, 뭔가 맘에 들지 않거나 불만이 많아 보였다. 그런데 더 식빵 누나 같은 부분은, 그런 불만이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을 하고, 해결책을 받아낸단 사실이었다. 오히려 2미터 거구의 농구 코치가 순한 양처럼 보일 정도였다. 아내와 난 그런 성격의 V가 신기하면서도 부러웠다.
또 특이한 점은 V네 나라 사람들의 문화가 우리나라 90년대까지와 굉장히 비슷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었다.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서양 사람을 보면 개인주의 거나 남의 일에 간섭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거나 하는 문화를 가진 것으로 생각하는데, 문화권에 동유럽에 가까운 북마케도니아 사람들은 가족 중심적이면서도 커뮤니티의 기능이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는 문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웃과도 가족같이 지내고, 모이는 것을 좋아하고, 서로 돕는 것에 인색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어렸을 적의 문화가 떠올랐는데, 지금은 전혀 그러지 않아서 오히려 완전 반대 문화를 가지고 있단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이제껏 계속 연락이 왔던 것이나 집에 초대한 것이 이해가 좀 되었다.
사실 나는 그런 호의를 굉장히 불편해하는 편이다. 내가 계속 도움을 줘야 하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내가 도움을 받으면 꼭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내가 도움을 주었으면 마음속 깊이 갚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런 계산적인 마음을 잘 알기에 호의를 호의에서 끝나리라고 절대 믿지 않고, 상대방이 무언가를 바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문화가 전혀 없다고 하니 믿기 어려웠다.
처음엔 다소 불편하긴 했지만, 나름 뜻깊은 시간이었다. 원래는 커피나 한 잔 마시고 오려고 했는데 저녁에 와인까지 마시고 잘 시간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V네 부부와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우리 아이와 T는 끊임없이 놀았다. 아주 신나서는.
아이들은 신나게 놀고, 우리는 새로운 문화에 대해서 알게 되기도 하고, 또 좋은 인연을 만나기도 했다. 도움받거나 주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하려고 괜히 사람들과 거리를 두려고 하지 말고 조금씩 가까워질 기회를 만드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직도 아이나 아내의 지인을 만나는 모임은 어색하긴 하지만..
Photo by Kelsey Chance on Unsplash
'나는 미국에 산다! > 주부 남편 아빠 미국 정착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D+70 미국에선 정말 분리수거 안 해도 되나요? (0) | 2022.11.18 |
---|---|
D+68 가을이라 가을바람, 가을 축제 (0) | 2022.11.16 |
D+60 루틴과 권태의 상관관계 (0) | 2022.11.14 |
D+57 페런하이트와 마일, 그리고 파운드 (1) | 2022.11.13 |
D+55 한국에서 온 마지막 소포 (0) | 2022.11.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