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학교에서는 입학 예정 학생들에게 예방 접종 기록을 요구한다. 기억이 다 나지는 않지만, 대부분 필수 예방 접종을 위주로 해서 기록을 요구한다. 거기에 팬데믹 시기라 코로나 19 예방 접종 기록 역시 요구했다. 미국에 가서 학교에 다니게 되는 사람이 두 명, 한 명은 아내, 다른 한 명은 우리 딸이다.
아이 같은 경우에는 예방 접종 기록이 전산화되어 있어서 기록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 우리 딸 같은 경우는 돌까지 미국에 있었는데, 미국에서 받았던 접종 기록 같은 경우는 (실물) 접종 카드를 처음 방문했던 소아과에서 보고는 전산 기록으로 넣어 주셨다. 그래서 만 열 살인 지금까지의 기록이 잘 남아 있었다. 질병관리본부(질병청) 홈페이지에서나 정부 24를 통해 예방 접종 증명서를 발급받으면 되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실제로 미국에 오고 나서도 소아과에 방문했을 때, 해당 증명서를 바탕으로 다시 미국 소아과 전문의의 증명서를 발급해 주었다.
문제는 아내였다. 사십 대 초반인 아내는 당연히 예방 접종 기록이 전산화되기 전에 예방 접종의 거의 대부분을 마쳤고, (예방 접종 전산화는 2000년대 초반 이루어졌다) 그래서 예방 접종 증명서를 떼면 독감이나, 이번에 맞은 코로나 백신만 뜬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예방 접종 기록은 B형 간염, 파상풍, 수두 등 거의 대부분 초등학생 때 맞는 예방 접종이었는데, 우리가 어렸을 때는 대부분 학교에서 맞았을 거다.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분명히 맞았다. 강압적이었으니까) 하지만 기록이 없다. 해당 접종을 맞아야 했던 시기가 거의 30여 년 전이고, 우리 아이가 맞았거나 맞아야 하는 접종 수준인데, 전산화가 되어 있지 않는 한 우리들의 ‘육아 카드’나 ‘접종 카드’가 남아 있을 리가 없다. 사실 ‘유학’을 가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대부분 20대이기 때문에 전산화 기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40대의 유학은 이렇게 걸림돌이 많구나, 하며 속상해한다.
예방 접종 문제 해결은 앞선 글에서 언급했던 아내의 추가 검진과 더불어 출국 전 2~3개월을 병원을 전전하게 한 원인이기도 했다. 예방 접종 기록이 없으면 이를 대체하는 의사의 소견이 필요하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예방 접종에 대한 항체가 있음을 증명하는 검사를 받아 결과를 증명서로 발급받거나, 다시 예방 접종을 맞거나, 해당 질병에 걸렸다가 나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거나이다. (해당 질병에 걸렸다 나았다는 것은 결국 항체가 있다는 증명이다) 입학하는 학교마다, 또 학교 소재 주마다 요구하는 접종 기록이 다르고, 또 이런 접종에 대한 증명을 받아야 하는 경우의 수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일반 의원에서 이런 조치를 받기가 쉽지 않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니 서울에는 이런 증명서를 전문적으로 떼 주는 병원이 있다고 하는데, 이미 수도권 외곽 살이가 4~5년에 이르는 우리로서는 서울 병원 방문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동네 거의 모든 내과에 전화해서 문의했지만, 전화를 받는 간호사, 리셉셔니스트들은 거의 뭘 어떻게 해 줄 수 있는지조차 몰랐다. 시간은 계속 가는데, 학교에서 요구하는 기록을 보낼 수가 없으니 정말 난감했다. 서류 제출 기한은 다가오고 있었다.
좌절하고 있던 찰나, 아내의 건강검진을 진행했던 센터의 내과에서 해당 검사와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행이었다. 아이가 등교해 있는 동안 아내와 함께 병원에 방문했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예방 접종은 대략 5~6개였는데, 기록이 있는 것은 코로나19 백신뿐이었다. 대부분은 피검사를 통해 항체검사가 가능했고, 딱 한 개의 예방 접종만 항체 검사가 불가능해서 새로 접종을 맞아야 했다. 하지만 피검사를 받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예방 접종을 맞았는데 또 맞아도 되나 이런 두려움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학교 서류를 완성하기 위해 정말 백방으로 뛰었기에,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안심이 되었다.
유학을 준비하는 어떤 온라인 커뮤니티 글에서도 이렇게 힘들게 접종 기록을 학교에 보냈단 글을 찾아보지 못했다. 이렇게 유학을 가는 사례가 워낙 많지 않으니,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대부분 극한 체험이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과정은 늘 쉽지가 않다. 아내는 또 한참을 성질을 낸다. 지방에 사는 사람은 유학도 안 가냐며. 예방 접종 항체 검사 하나를 위해 다 서울에 가야 하냐며. 맞는 말이다. 물론 유학 가는 사람들이 지금은 대부분 접종 기록 전산화 이후에 태어나거나, 접종을 한창 맞고 있던 시기여서 전산화가 다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방에 산다고 불편함은 많지 않겠지만, 30대 이후의 성인들도 과거 기록까지 차차 전산화가 되었으면 좋았겠다 싶다. 딸아이의 접종 기록은 그야말로 3~40여 개의 다다르는 방대한 접종기록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미국의 소아과 의사가 감탄할 정도였다. 반면 아내의 기록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으니 학교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물론 큰 수요와 필요가 존재하지 않는 곳까지 제도가 갖춰지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덕분에 우린 극한 체험이었다.
아내는 항체검사와 접종 기록, 그리고 의사 소견을 적은 학교 양식까지 모두 마무리해서 스캔 후(!) 학교에 발송했다. (이 또한 어이없다. 학교에서 원본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스캔본은 말 그대로 복사본 아닌가?) 학교의 개인 페이지에서 해당 자료 모두 이상 없다는 메시지가 떴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학교 헬스센터의 요구사항을 충족했다. 그렇게 투두 리스트에서 아내 학교 입학을 위한 할 일 하나를 또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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