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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에 산다!/와이프 따라 미국 가는 남자 1

아내의 신박한 영단어 공부법

by jcob why 2022.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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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신데 아직도 일해?’

 

늦은 밤, 아이를 재우고 나서 주방에 오니, 아내가 노트북을 켜놓고 뭔가를 열심히 정리하고 있다. 나한테는 그렇게 칼퇴근을 강조하는 그녀가 이 늦은 시간까지 일한다는 생각에 빽 신경질을 낼 참이었다.

 

‘단어장.’

 

아, 공부하는 중이구나. 유학 준비 중이니까. 그런데 엑셀이다. 누가 보면 아마도 회사 업무를 정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거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유학 준비를 시작한 아내는 토플과 GRE 시험을 봐야 했다. 꽤나 까다로운 시험이긴 하지만, 아내에게 힘든 과정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GRE야 대학원 입학시험이니까 그렇다고 해도, 호주 유학 경험에 외국계 회사를 꽤 오랫동안 다닌 그녀가 영어 공부를 빡세게 할 이유는 전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뭘 단어장을 직접 만들기까지 해. 거의 다 알잖아.’

 

‘나 영어 못해.’

 

아내는 항상 그렇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그녀는 내가 아는 거의 대부분의 한국인들보다 영어를 잘했다. 20여 년 전 처음 유학을 떠나기 전에도 그랬고, 유학 중에도, 심지어 결혼해서 미국에 살 때도 나보다 영어를 잘했다. 내가 단어를 물어보거나 그러면 모르는 단어가 거의 없었다. 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단어조차. 

 

그런데도 그녀는 영어 단어장을 직접 만드는 중이었다. 물론 GRE 단어가 굉장히 어렵다고는 한다. 그렇지만 단어장까지 직접 만들면서 할 것까지야. 그저 시중에 나온 단어장 외우고, 문제집 조금 풀어보면 되지 않나?

 

‘그럴 시간 없어.’

 

아내의 논리는 그랬다. 다들 공부할 시간이 많지만, 자기는 시간이 없다. 낮에는 일도 해야 하고, 아이도 돌봐야 한다. 남편(나)이 퇴근하고 아이가 잠에 들어야만 공부할 수 있다. 그러면 공부할 양을 최대한으로 줄여야 한다. 꼭 외우고, 꼭 공부해야 하는 것만 해야 한다. 그러니까, 여러 개의 시중 단어장 중에서 중복되고 빈도수 높은 것만 체크해서 그것만 판다. 중복된다는 것은 그게 가장 중요하다는 거니까.

 

즉, 엑셀 시트에 시중 단어장에 나온 단어들을 나열하고 중복 단어를 체크해서 중복 회수가 가장 많은 순서로 정렬하고 그 순서로 외우는 것이다.

 

으음, 일을 너무 오래 한 거 아닌가 싶다. 귀신같이 업무화하는 능력이 탁월하구나.

 

‘원래 아는 단어 빼고 그러니까 500개 남았어. 그것만 외울 거야.’

 

신박하다. 

 

난 절대 그렇게 하지 못했을 거 같다. 그저 주야장천 문제풀이만 죽어라 했을 거 같다. 뜻도 모른 채로 말이다. 수능 때 그랬다. 난 외국어 영역을 잘 못한 편이어서, 실제로 영어 잘하기를 포기하고, 문제풀이로 승부를 봤다. 시중에 나온 거의 모든 문제집을 다 풀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영어는 못하지만 점수는 냈던 기억이 있다. 나였다면 GRE 공부도 아마 그렇게 접근하지 않았을까?

 

아내는 그렇게 효율을 극대화해 공부에 매진했고, 시간은 그렇게 째깍째깍 흘러갔다.

 


 

이 글들은 대략 1년 전 즈음에 있었던 일들을 바탕으로 쓰인 내용이에요. 만약 저희 가족의 현재 생활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미국 이주 일기' 매거진을 방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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