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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주37

D+165 딸아이의 미국 초등학교 첫 학기 결산 나나 아내는 20대부터 해외 생활 경험이 많았다. 아내는 20대 초반에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어학연수와 유학 생활을 했고, 나는 20대 후반에 미국에서 대학원 유학 생활을 했다. 그래서 10년을 한국에서 지냈어도 다시 미국에 가기로 했을 때, 두려움이 많지 않았다. 미국에 가면 무슨 일이 있을지 예측이 가능하고, 어떤 장애물이나 어려움을 겪을지 알기 때문에 마음에 각오를 다지기에도 좋았다. ​ 미국 유학 시절 태어난 딸아이는 달랐다. 미국에서 태어나 서부 끝에서 동부 끝까지 이주하는 엄청난 일들을 겪었음에도, 그 모든 일들은 고작 첫돌도 지나기 전의 일들이다. 돌이 막 지난 13개월 때 한국으로 들어온 뒤, 약 10년, 정확히는 9년 동안 한국에서 한국의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다. 당연히 미국에서의 생활은 .. 2023. 1. 19.
2-11 미국 가는 이삿짐, 소포 박스 여섯 개 10년 전 뉴저지에서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나와 아내가 최종적으로 싼 짐은 소포 박스 여섯 개였다.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다 보니 많지는 않았지만 침대니 서랍장이니 해서 짐이 꽤나 늘어났었고,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한 이상 모든 짐을 다 처분해야 했다.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를 이용해 정말 염가로 가지고 있던 가구나 전자제품들을 모두 처분했고, 꼭 가지고 가야만 하는 짐만 추리고 보니 비행기에 실을 수 있는 짐을 제외하고 가장 큰 소포 박스 여섯 개가 나왔다. 그렇게 육 년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올 때 내게 남은 것이 소포 박스 여섯 개였다. 10년 만에 다시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향하게 되자,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챙길지가 또 큰 고민거리가 되었다. 10년 전에는 갓난쟁이.. 2023. 1. 17.
D+159 우리 집에 초대합니다 누구든 새로운 장소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다. 도에서 도를 이동, 아니 시에서 시로 이동만 하더라도 쓰레기 분리배출에서부터 사소한 행정 복지 시스템, 아파트 관리 규정들이 미세하게 달라서 은근히 불편함을 야기하곤 한다. 이웃과의 거리감이 점차 멀어지는 한국 사회의 특성상 모르는 것들을 이웃에게 물어보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짧지 않은 시간 불편함을 감수하거나, 심할 때는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기도 한다. 한국 내에서 시에서 시, 도에서 도로 이동한다 할지라도 어려운 일이 많을 텐데, 나라에서 나라로 이주를 하는 입장에서 어려운 일들이 얼마나 많았으랴. 처음 이곳에 오고 나서 약 한 달 동안은 정말 잠도 잘 자지 못할 정도였다. 미국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어도 온 가족이 함께 삶의 터전을 바꾼다는 것이 쉬운.. 2023. 1. 11.
2-6 미국에서 살 집을 인터넷 쇼핑하다! 아내가 학교 입학 허가 서류를 받고 나자, 여러 방면으로 진짜 이주 준비가 시작되었다. 마침내 서류를 받았으니 미국 비자를 신청해야 했고, 아내의 학교도 완전히(?) 확정됐으니 우리가 살 집도 정해야 했다. 미국 비자 신청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주 준비를 위해 워낙 신경 쓸 것이 많기도 했고, 처음 아내가 유학원을 등록했을 때 비자 신청은 유학원에서 도와준다고 했어서 유학원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기로 했다. 비록 아내가 합격한 학교가 유학원에서 같이 서류를 작성했던 학교는 아니었지만, 유학원에서는 자신들과 함께 지원한 학교로 진학하지 않는다고 해도 비자 수속을 도와준다고 하니 한시름 놓았다. 내가 진짜 신경을 써야 했던 부분은 우리 가족이 머물게 될 터전을 찾는 작업이었다. 다른 이주 준비 관련 블로그나.. 2022. 12. 13.
2-5 해외이주? 혼자 다 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미국 생활을 했던 나는 미국 이주에 대한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자신감이라 함은 이런 거다. 이미 한 번 살아봤으니 웬만한 제도나 행정적인 부분들은 다 알고 있고, 다른 사람들처럼 정착이나 이주에 대한 시행착오 없이 착착 진행해 낼 수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실질적인 이주 준비를 시작하기 전까지, 아무런 걱정도 없이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자신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이유에는 세 가지 정도가 있었다. 첫 번째는 과거의 기억이 조작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마치 과거에 내가 미국에 살 때, 무슨 일이든 잘 진행하고 잘 적응했었던 것으로 착각했다. 모든 제도에 대한 것도 빠삭했었다고 오해했다. 10년이 지나고 나니 정말 누구의 말처럼 사람의 .. 2022. 12. 6.
D+108 자격지심 극복 대작전 *오늘 쓰는 글은 아직 내가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하지만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한 목표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머리로는 어떻게 되어야 한다 굳건하게 믿으며 노력하고 있지만, 무의식과 감정의 습관은 그 반대 방향을 늘 향하고 있다. 그렇기에 오늘의 글은 대단한 이상향을 향하고 있음에도, 그 반대를 향하는 무의식 때문에 전혀 반대인 모습을 근거로 한 어휘나 태도가 드러날 수 있다. 난 지금 나의 모습이 우리 사회에서 허용되어야 하는 다른 가정의 모습의 하나여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 물든 나의 무의식과 감정은 여전히 틀에 박힌 ‘옳은’ 가정의 모습에 매몰되어 불쑥불쑥 솟아오르곤 한다. 어쩌면 평생의 여정일지도 모르는 나의 삶의 방향에서 또 엇나간 오늘의 모습이다. *이 글 안에서 남자와.. 2022. 12. 6.
D+100 100일간의 미국 정착, 우리는 정착했을까? 미국에 처음 도착한 날이 2022년 8월 1일, 그날로부터 100일이 지났다. 정확하게 100일이라고 못 박지는 않았지만, 미국 정착에 필요한 여러 세팅을 마무리하는데 100일 정도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얼추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가 되면 모든 미국 생활의 세팅이 마무리되겠지,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오늘 달력을 보니 미국에 온 지 100일이 되었다.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벌써 다 잊어버리고 새로운 일상을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브런치와 블로그에 이주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출국하기 일주일 전부터다. 우리 가족의 귀한 시간을 잘 남겨놓고 싶었고, 사진도 동영상도 좋지만 당시의 생생한 감정을 잘 남겨 놓고 싶었다. 늘 작심삼일에 용두사미, 계획만 거창하게 하고 흐지부지 되는 일이 많았던.. 2022. 12. 1.
D+61 미국에서 만난 식빵 누나의 초대 아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같은 아파트에 같은 학년 남자 친구 T도 처음 미국에 와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세 아이중 막내인 T는 저 멀리 유럽 마케도니아(그리스 위에 있는 북마케도니아 공화국)에서 온 친구로, 우리 아이와 같이 ESL 클래스를 같이 듣고 바로 옆반에 버스도 같이 타고 다녀서 금방 친해졌다. T의 엄마 V는 처음 학교 버스를 태울 때 처음 만났는데, 두 아이가 같은 학년인걸 알고는 대뜸 내 전화번호를 받아 갔다. 나이는 한참 많아 보였지만, 키도 엄청 크고 언동 선수 출신 삘 나는 V의 포스는 장난이 아니었고, '와, 뭐 이런 친화력 갑인 사람이 있나' 생각했다. 번호는 가르쳐 줬어도 자주 연락이 오리라 생각하진 않았는데, 정말 하루 걸러 하루 연락이 왔다. ‘제이.. 2022. 11. 16.
D+60 루틴과 권태의 상관관계 나는 루틴에 굉장히 집착하는 편이다. 성격이 산만하고 잘 집중하지 못하는 스타일이라, 루틴을 정하고 그대로 생활하지 않으면 쉬이 나태해지는 모습을 보이는 편이다. 그래서 크던 작던 변화를 싫어하는 편이고, 변화가 필요할 때는 가장 짧은 시간 안에 새로운 루틴을 설계하고 일주일 안에 그 루틴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이러한 루틴이 생산성을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과 도시락, 커피 준비부터 씻고 옷 입고 준비해 나가는 시간까지. 철저하게 루틴에 의거해서 움직였다. 회사에 도착해서도 아침에 이메일 검토와 스케줄 관리, 업무의 순서까지 루틴대로 업무를 시작했고, 점심시간마저도 밥 먹고, 책상 스트레칭, 산책까지, 루틴, 루틴, 또 루틴이 계속되었.. 2022. 11. 14.
2-2 일상을 멈출 시기를 정하다 아내가 학교를 정한 이후, 이제 본격적으로 미국으로 갈 준비를 해야 했는데, 미국을 가는 준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이곳 생활을 마무리하는 것, 다른 하나는 그곳 생활을 준비하는 것이다. 어쩌면 가장 처음 정해야 할 것은 우리가 언제 한국에서의 일상을 멈출 것인가에 대해서였다. 아내는 재택근무로 외국계 IT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집에서 일할 수 있어서 아이를 도우미 없이 등하교시킬 수 있었고, 몇 개 되지 않지만 학원에 등 하원도 시켜주고 있었다. (사실 정말 미친 스케줄이다) 아이는 막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갔다. 작년까지는 팬데믹으로 격일 등교, 격주 등교 등으로 스케줄이 엉망진창이었는데, 올해부터는 본격적인 전면 등교가 시작되었다. 나는 애니메이션 회사에 출퇴근 근무를 하고 있었다... 2022.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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