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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에 산다!/와이프 따라 미국 가는 남자 1

처음엔 막연하게 망상했다

by jcob why 2022.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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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가자. 이제는 정말 가자.’

 

여기서 죽도록 살기 싫은 것도 아니었다. 막연한 동경에 빠져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좀 늦긴 했지만 직장에서 자리도 잘 잡았고, 이제는 진짜 올라갈 일만 남았다. 정말 지옥 같았던 육칠 년이 지나고 나니, 이제는 조금씩 행복이 느껴지는 삶을 살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오히려 해외로 나가게 되면 고생길이라는 것도 알았다. 난 이십 대 후반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상태로 유학생활을 했고, 젊은이의 낭만으로 그 시절을 버텼을 뿐 절대 쉬운 생활이 아녔다. 지금 가게 되면 그때와 다름없는 여러 문제를 떠안은 채 책임질 식구는 더 늘게 된다.

 

직장을 바라고 가는 것도 아니다. 지출에 대한 대강의 계획이 있기는 하지만, 백 프로는 아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몇 푼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 삼사 년 정도 먹고 살 돈 정도만 계획에 넣었다. 그러면 공부는 끝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다시 빈털터리가 된다. 

 

그래도 난 유학을 준비하는 아내를 따라 같이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너무 속도감 있는 삶이 버거웠고, 능력주의에 매몰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사라지는 것도 싫었다.

 

딸아이는 어느덧 커서 만 아홉이 되었고, 내가 자라던 시기와 다르지 않은 교육 환경과 사회 환경, 심지어 더 나빠진 자연환경에서 자라야 할 숙명이 다가오고 있었다.

 

난 이 땅의 교육 환경의 수혜자이긴 하지만, 그래도 딸아이가 그 힘든 시기를 돌파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고민하고 탐구하며 자신의 앞날을 설계하게 해 주고 싶었다.

 

아내는 궁금한 게 많은 사람이다. 더 공부하고 싶어 했다. 그가 가졌던 자기 분야와 이 땅에 대한 수많은 의문점을 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통해 탐구하고 싶어 했다. 

 

그녀는 힘든 환경에서 이미 한국 학교의 석사까지 마쳤지만, 지금이 아니면 다시 공부를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남 부럽지 않은 직장을 다니고 있기는 했지만, 한계를 절감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막연한 망상이라고 생각했다. 돈도 없고, 이 나이에 삶에 그런 큰 변화를 주는 것이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직장은? 집은? 아이 학교는? 아내 학비는? 걱정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녔다.

 

내 인생에서 내가 이런 큰 도전을 언제 했었나 생각해 봤다. 몇몇 변곡점이 될 만한 결정을 했던 때가 있었다. 특정 시기에 군대를 갔던 것, 없는 집에서 유학을 가기로 했던 것, 방송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직종을 바꾸기로 했던 것.

 

지금 생각하면 잘 한 선택이었다 얘기하지만, 그때 생각하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어쩌면 이 결정도 그러리라. 그렇다면..

 

그래, 가자! 

 

그렇게 난 아내의 유학길을 따라 미국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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