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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유학37

D-2 감사함이 넘치는 퇴거 준비 해외 이주에 앞서 집을 빼야 하는데, 그 날짜를 출국 당일이 아닌 하루 전날로 정했다. 정신없이 짐을 빼고 그날 바로 출국한다고는 도대체 상상할 수 조차 없었다. 그래서 딱 하룻밤만 공항 근처 호텔을 예약하고 집을 하루 전에 빼기로 했다. 집을 하루 전에 빼는 또 다른 이유는 혹시 ‘셋집의 보증금을 떼일까 봐’였다. 계약 날짜대로 집을 빼는 것도 아니고 뒤이어 다른 세입자가 들어오는 것도 아니어서, 괜히 보증금을 떼일 것만 같았다. 그래서 바로 출국을 해버리면 대응이 안되니 그걸 위해서라도 하루 여유를 둔 것이었다. 그런데 어젯밤 늦게 집주인이 보증금을 보내왔다. 마침 관리비 정산금과 장기수선충당금 정산도 마쳤는데 내가 정산해서 받을 돈이 만 원 아래길래 안 주셔도 된다 하려는 참이었는데, 먼저 보증금을.. 2022. 9. 29.
아내, 유학을 위해 직장인이 되다 ‘ㅇ 팀장이 내가 다시 회사에 왔으면 좋겠대.’ ㅇ팀장은 아내가 전의 전에 다니던 회사의 팀장이다. ‘정말? 그런데 어떻게 다녀?’ 코시국의 한 복판, 난 재택을 하지 않는 회사에 다니는데, 아이는 학교에 거의 나가지 않았다. 아내는 유학 준비와 함께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우리는 아내가 다니던 회사와 더 멀리 이사까지 왔다. 출퇴근은 불가능했다. ‘재택이래. 나 그만두고 나서 계속 재택이었대.’ 응? 그래? 그러면 아이를 보면서도 일 할 수 있는 거야? 나는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아내는 그 직장에서 꽤나 인정받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그래서 회사 욕할 때마다 등장하는 몇몇 사람들이다) 아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아내가 더 좋은 .. 2022. 9. 29.
D-3 한국에서의 마지막 평일 오늘 오전엔 장기렌트를 하고 있던 차량을 반납하고, 딸아이의 휴대폰을 해지했다. 이번 미국 이주를 준비하기 전부터 언제든 해를 갈 수 있단 생각에 치를 긴 기간 할부로 구매하거나 휴대폰을 약정을 걸어놓거나 하지 않았다. 보통은 해외 이주를 하게 되면 차를 팔거나 휴대폰/인터넷 약정을 파기하는 게 꽤나 까다롭고 번거로운 일이라는데, 우린 다행히 그런 번거로운 일은 없었다. 자동차 같은 경우는 그저 아침에 탁송 기사님이 오셔서 처를 가지고 가시니 끝이었고, 아이 휴대폰은 가족관계 증명서와 내 신분증으로 십 분 만에 해지를 끝냈다. 이제 남은 건 출국 당일날 아내의 휴대폰을 알뜰폰으로 교체하는 일만 남았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티브이 인터넷 기사가 안 왔다. 내일 직영점에 모뎀과 셋톱박스를 반납해야 한다... 2022. 9. 28.
나 보다 어린 나이야 방송을 보다 보면 터무니없는 계기로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해 인생의 경로를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와~ 저 나이에 어떻게 저런 결정을 했대? 대단하다 야.’ 몇 번의 공부할 시기를 놓친 주인공들은 절체절명의 순간 결국 공부의 길로 가게 되었고,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공부의 길에서 여러 고생을 한 끝에 성취를 이루고 삶의 경지에 이른다. 그런 이야기를 읽거나 보거나 들으면, 거의 대부분은; ‘아, 참 대단한 사람이다.’ 하고 그냥 넘어가기 일쑤다. 그날도 비슷한 경우였다. 유명 엠씨가 진행하는 인터뷰 프로그램에서 한 저명한 인물이 출연했고, 뒤늦게 박사 과정을 하게 된 계기와 어려움들, 그리고 그 이후의 바뀐 삶에 대해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었다. ‘봐, 그러니까 우리도 지금 하면.. 2022. 9. 28.
유학 준비를 시작한 아내 아내는 21년 4월부터 유학 준비생이 되었다. 팬데믹으로 모든 움직임이 멈춰 있던 시기, 어쩌면 큰 도박이었다. 지금 준비하면 22년 가을에나 학교를 다니게 될 텐데. ‘그때 정도 되면 괜찮겠지. 그리고 지금은 다들 겁먹어서, 유학 같은 거 못해.’ 아내는 그때 코로나 때문에 1년 넘게 일을 쉬고 있었다. 아이가 1년 훌쩍 넘게 원격 수업을 하고 있고, 내 직장은 재택근무를 하지 않아 꼬박꼬박 출근을 해야 했다. 마침 이직한 회사에서 불만이 쌓여 있던 아내는 과감히 사직서를 던졌으나, 1년 가까운 경력 단절에 아내의 자존감은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네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을까? 내가 표현은 잘 못해주는 편이지만, 아내는 진정한 이 시대의 능력자다. 육아와 가사를 내가 같이(?.. 2022. 9. 27.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해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의 어느 봄날, 그렇게 떠나겠다는 원대한 꿈을 꾼 다음 날, 아내는 덜컥 유학원에 거액을 지불했다. ‘얼마라고?’ ‘ㅇ백만 원’ 원래의 나였다면 지불이 불가능한 금액이다. 그 돈을 내지 않아도 지원할 수 있는데. 그 돈 말고도 원서비가 얼마나 비싼데. 그 사람들이 합격시켜주는 것도 아닌데. 난 원래 그렇게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도와주는 사람에게 돈을 지불한다는 것, 납득이 되지 않았다. 사실, 도움을 받는다는 것 자체도 그다지 익숙하지 않았다. 나는 입시를 준비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했다. 학교에서는 한 계단이라도 높은 사다리의 대학을 보내기 위해, 나의 꿈과 진로 따윈 무시한 채 모 학과를 강요했고, 부모는 자신의 가업을 잇게 하기 위해, 문과인 나에게 모 .. 2022. 9. 24.
D-6 합리적 소비와 궁상의 한 끗 차이 처가 외할머니와의 눈물 나는 이별을 마치고 가족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왔다. 지난주 내내 짐을 빼고 가구를 드러낸 탓에 홈 스위트 홈 같은 느낌은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여기저기 쌓인 짐들은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이번 고향 방문 간에 갑자기 나한테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났다. 미국 가면 의료보험이 부담스러운 탓에 건강 검진을 거의 다 받고 특별한 문제도 없었는데, 갑자기 두드러기가 올라와 괜히 처 외할머니와 가족들 모두 걱정을 끼쳐 버렸다.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내 알레르기 검사부터 예약을 잡았다. 이런 부분조차 아내와 나의 성향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아내는 아프면 바로 병원에 간다.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병원에서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어야만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아파서 견딜 수 없을 때 병원.. 2022.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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