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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에 산다!128

D-4 누구를 위한 개인정보 & 본인 인증이지? 아직 출국까지는 4일이 남았지만 평일은 이제 오늘과 내일, 이틀뿐이다. 관공서 일을 볼 수 있는 날은 이 이틀이 전부다. 오늘 오전엔 은행 업무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을 떠나 5~6년을 외국에 있어야 하기에 각종 보험이나 적금 등 월납입을 하고 있는 상품들은 이미 온라인으로 모두 해지했다. 완전 한국 계좌들을 없애고 가는 것은 아니어서 크게 부담은 없지만 그래도 고정 지출이 있는 건 부담스럽다. 국내에서 수입이 있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미국에선 아직까지 한국보단 현금을 많이 쓰는 편이어서 환전도 해야 했다. 첨엔 아무것도 모르고 십 년 전에 처음 유학 갈 때처럼 여행자 수표로 최대 소지금액에 맞춰 환전하려고 했는데, 재작년에 여행자 수표가 발행 중단됐단다. 팬데믹으로 인한 수요 급감이 원인이란다... 2022. 9. 27.
유학 준비를 시작한 아내 아내는 21년 4월부터 유학 준비생이 되었다. 팬데믹으로 모든 움직임이 멈춰 있던 시기, 어쩌면 큰 도박이었다. 지금 준비하면 22년 가을에나 학교를 다니게 될 텐데. ‘그때 정도 되면 괜찮겠지. 그리고 지금은 다들 겁먹어서, 유학 같은 거 못해.’ 아내는 그때 코로나 때문에 1년 넘게 일을 쉬고 있었다. 아이가 1년 훌쩍 넘게 원격 수업을 하고 있고, 내 직장은 재택근무를 하지 않아 꼬박꼬박 출근을 해야 했다. 마침 이직한 회사에서 불만이 쌓여 있던 아내는 과감히 사직서를 던졌으나, 1년 가까운 경력 단절에 아내의 자존감은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네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을까? 내가 표현은 잘 못해주는 편이지만, 아내는 진정한 이 시대의 능력자다. 육아와 가사를 내가 같이(?.. 2022. 9. 27.
D-5 우왕좌왕 제이콥 씨 아침에 눈을 떠 거실을 바라보는데 마음이 무겁다. 아직도 많은 물건들이 가방도 쓰레기 봉지도 아닌 곳에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하나씩 차근차근하면 된다며 초조해 말라고 하지만, 난 가슴이 답답해 온다. 나만의 특징인 것 같다. 시간을 계산해 보면 당연히 이번 주 주말까지 마칠 수 있음을 알지만, 그냥 하루빨리 이 모든 물건들이 다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오전에 처리해야 할 관공서 일이 몇 가지 있었다. 주민센터(아직도 동사무소가 더 익숙한 세대다)에 가서 해외 체류신청을 하고, 우체국에 가서 친지들에게 일부 소모품들을 나눠주는 소포를 보내야 헸다. 싱글이어서 부모님 댁에 살 때는 이런 건 특별히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주민 등록이 부모님 댁으로 되어 있었으니까. 그런데, 한 가정을 이루어 살고.. 2022. 9. 24.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해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의 어느 봄날, 그렇게 떠나겠다는 원대한 꿈을 꾼 다음 날, 아내는 덜컥 유학원에 거액을 지불했다. ‘얼마라고?’ ‘ㅇ백만 원’ 원래의 나였다면 지불이 불가능한 금액이다. 그 돈을 내지 않아도 지원할 수 있는데. 그 돈 말고도 원서비가 얼마나 비싼데. 그 사람들이 합격시켜주는 것도 아닌데. 난 원래 그렇게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도와주는 사람에게 돈을 지불한다는 것, 납득이 되지 않았다. 사실, 도움을 받는다는 것 자체도 그다지 익숙하지 않았다. 나는 입시를 준비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했다. 학교에서는 한 계단이라도 높은 사다리의 대학을 보내기 위해, 나의 꿈과 진로 따윈 무시한 채 모 학과를 강요했고, 부모는 자신의 가업을 잇게 하기 위해, 문과인 나에게 모 .. 2022. 9. 24.
D-6 합리적 소비와 궁상의 한 끗 차이 처가 외할머니와의 눈물 나는 이별을 마치고 가족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왔다. 지난주 내내 짐을 빼고 가구를 드러낸 탓에 홈 스위트 홈 같은 느낌은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여기저기 쌓인 짐들은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이번 고향 방문 간에 갑자기 나한테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났다. 미국 가면 의료보험이 부담스러운 탓에 건강 검진을 거의 다 받고 특별한 문제도 없었는데, 갑자기 두드러기가 올라와 괜히 처 외할머니와 가족들 모두 걱정을 끼쳐 버렸다.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내 알레르기 검사부터 예약을 잡았다. 이런 부분조차 아내와 나의 성향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아내는 아프면 바로 병원에 간다.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병원에서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어야만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아파서 견딜 수 없을 때 병원.. 2022. 9. 23.
처음엔 막연하게 망상했다 ‘그래, 가자. 이제는 정말 가자.’ 여기서 죽도록 살기 싫은 것도 아니었다. 막연한 동경에 빠져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좀 늦긴 했지만 직장에서 자리도 잘 잡았고, 이제는 진짜 올라갈 일만 남았다. 정말 지옥 같았던 육칠 년이 지나고 나니, 이제는 조금씩 행복이 느껴지는 삶을 살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오히려 해외로 나가게 되면 고생길이라는 것도 알았다. 난 이십 대 후반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상태로 유학생활을 했고, 젊은이의 낭만으로 그 시절을 버텼을 뿐 절대 쉬운 생활이 아녔다. 지금 가게 되면 그때와 다름없는 여러 문제를 떠안은 채 책임질 식구는 더 늘게 된다. 직장을 바라고 가는 것도 아니다. 지출에 대한 대강의 계획이 있기는 하지만, 백 프로는 아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지 .. 2022. 9. 23.
D-7 헤어짐을 슬퍼하는 가족과 도리를 강요하는 가족 이제 미국으로 떠나는 날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 가족이 어떻게 미국에 가게 되었는지는 다른 글 카테고리 “와이프 따라 미국 간 남편”에서 보는 것으로 하시고, 이 매거진에는 실시간으로 우리 가족과 나에게 벌어지는 실시간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지난주 불꽃같고 전쟁 같았던 비자 인터뷰가 끝나자, 갑자기 미국 출국일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한 한 달 반 여 전이 구매한 미국행 비행기는 8월 1일! 5월 말에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에 출국할 준비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조금 못되었고, 정확히 두 달이 되는 날, 미국으로 출국한다. 이젠 준비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여기에 남겨놓고 가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모든 걸 다 갖고 가거나, 아니면 다 버리고 가야 한다. 그래서 지난 수요일 이후 주말까지 집을 .. 2022. 9. 22.
그녀가 합격을 했다 ‘자기야.’ ‘응?’ ‘나, 붙었나 봐.’ ‘응?’ 집안일을 모두 마친 뒤, 아내는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며 휴대폰의 이메일을 정리하고 있었고, 난 그 옆의 실내 자전거에 올라 운동을 하고 있었다. ‘ㅇㅇ 대학교의 박사과정 담당자인데 축하한다는데?’ 아내가 조금 멍한 말투로 말한다. 나의 반응 또한 굼뜨다. ‘... 응?’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평일 저녁 시간에 아내는 덜커덕 합격 메일을 확인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계속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몇몇 학교에서의 리젝션 메일에 속상했던 일이 불과 며칠 전이었는데. 그럼에도 뭔가 초 현실적인 상황이었다. ‘이거 아무래도 스팸인 것 같아.’ 얼마나 초 현실적이었으면 아내는 그렇게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메일에 몇 문장 없었다. 대.. 2022.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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