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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애니피디다!/애니 만드는 남자

우린 꽤나 실력 좋은 실무자들이다

by jcob why 2022.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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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십 대 후반 미국에서 유학을 했어요. 애니메이션을 공부할 계획은 아니었어요. 이미 드라마 연출 커리어도 있고, 영화와 드라마 제작에 관심이 많았던지라, 전 영화과로 진학했죠. 그러다가 지역의 특성상 영화 특수효과와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생겼고, (제가 공부했던 샌프란시스코 지역엔 픽사 스튜디오와 루카스 필름, 비주얼 이펙트 최강 기업 아이엘엠(ILM)이 있었어요) 영화 프로듀싱을 전공하면서 애니메이션 학과 학생들과 협업하며 애니메이션 제작자의 꿈을 키우게 되었어요.

 

그런데 현지 애니메이션 학과 학생들이랑 협업하면서 그 실력에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정말 너무 못하는 거 있죠? 그런데 수정 의견을 주거나 크리틱을 좀 하면 아주 말은 청산유수인 거예요. 이건 이래서 이런 거다. 저건 저래서 저렇다. 도대체 감독과 프로듀서의 의견을 잘 듣지를 않는 거죠. 그래서 전 저 사람들이 회사 가서 일은 제대로 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 후 가끔 글로벌 취업 소셜 미디어인 '링크드인'에 들어가 과거 협업했던 친구들을 보면 깜짝 놀라게 돼요. 디즈니나 픽사, 혹은 소니나 블리자드, 이에이(EA)와 같은 큰 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는 거 있죠. 링크드인에 포트폴리오를 가끔 올리기도 하는데, 실력이 엄청나게 성장했더라고요. 놀라움의 연속이었죠.

 

저는 여건상 한국에 돌아와 애니메이션 프로듀서로 일을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많은 실무자들을 만나고 함께 일을 하게 되었죠. 뿐만 아니라 연차가 쌓여가면서 제가 다양한 영역의 실무자들을 직접 면접 보고 채용할 기회를 얻기도 했어요.

 

저는 한국의 실무 담당자들의 실력이 매우 좋다고 생각했어요. 제 회사에 지원했던 다양한 실무 지원자들의 실력도 출중하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미국에서 만나 협업했던 학생들과 비교해서는 월등하다는 생각이 많았죠. 물론 미국에서의 경험은 대부분 학생이던 시절의 경험이긴 하지만, 대학원이었기에 실무를 하다가 학업을 추가적으로 진행하는 친구들도 많았거든요.

 

물론 미국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는 한국인 실무자 분들이 많아요. 애니메이션 산업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디즈니나 소니, 드림웍스 등 다양한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성과를 내는 많은 한국인 실무자 분들의 기사를 보신 적이 있을 거예요. 그분들도 물론 훌륭한 실력을 가진 분들이지만, 우리나라의 업계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도 살력이 정말 좋으시답니다.

 

그런데 국내 실무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글로벌 기업의 실무자 분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뭐 그분들이 작업한 작품들이 워낙 유명하고 입이 딱 벌어지는 작품들이 많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요. 하지만 개개인의 실력으로만 보면 전 그 실력의 차이가 크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분들은 더 훌륭한 실력을 가졌다고 생각할 때도 많고요.

 

해외의 그분들은 그 유명한 메이저 회사에서 일하고, 국내 실무자 분들은 국내의 (어쩌면 너무 열악한) 작은 회사에서 일하고. 이를 나누는 차이가 실력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시장과 자본의 크기 차이에서 온다고 보는 게 더 맞다고 봐요.

 

수년 전 회사에서 팀원들과 함께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모아나’를 보러 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한 선배가 크레디트 롤에서 애니메이터의 숫자를 세 보았다고 해요. 전체 영화 분량을 애니메이터 숫자로 나눠 봤더니, 개인당 2초가 나오더라는 거예요. 물론 그렇게 작업을 하는 게 아닌 것 정도는 저희도 알고 있지만, 저희 같은 경우 전체 시리즈에 투입되는 애니메이터의 수가 크레디트 롤 기준으로 20명 내외거든요. 그만큼 규모와 자본의 차이가 있으니, 겉으로 보이는 실력의 차이가 보이는 거겠죠?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오히려 국내 실무자들이 더 실력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 봐요. 가끔 해외 스튜디오의 구인 포스팅을 리뷰할 기회가 있는데, 지원자 자격란에 보면 꼭 있는 문구가 있어요.

 

Ability to multi-task within a fast-paced environments all while meeting strict deadlines
빠르게 진행되는 업무 환경에서 엄격하게 데드라인을 지키면서도 멀티태스킹 하는 능력

 

전 가끔 이 문구를 보면서 우리나라 실무자 분들만큼 이 자격을 갖춘 분들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엄격한 데드라인과, 속도전, 그리고 멀티태스킹. 이건 정말 우리나라 실무자분들에게 특화된 능력이거든요.

 

전 가끔 우리나라 실무자 분들이 꿈을 크게 가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바로 미국의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꿈 말이에요.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준비해야 해요. 바로 영어 소통 능력과 스스로 생각하고 일하는 능력이에요. 이 두 가지만 준비된다면 국내의 웬만한 실무자들은 글로벌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확신한답니다. 아마도 계속 실력을 키우면서 잘 준비한다면 이미 외국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다른 실무자분들처럼 국내 실무자들에게도 그런 기회가 열릴 거라고 봐요.

 

그리고 아주 개인적으로는, 국내 애니메이션 기획/제작/연출자들도 글로벌 시장으로 많이 진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최근 라이브 액션 분야(영화와 드라마)에선 조금씩 세계적으로 관심을 갖는 개획/제작자들이 나오고 있죠. 아무래도 지난 20~30년간 영화 드라마 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해 오면서 그 성과가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애니메이션 산업은 라이브 액션 분야와는 조금 다르게 아무래도 산업 자체에 무게 중심이 치우친 경향이 있어서, 스타 기획/제작자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은 아니지만, 유독 기획/제작자로서 외국의 스튜디오에서 활동하시거나 성과를 내고 계신 분들이 없어서 너무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저의 커리어 마지막 꿈이기도 하답니다. 애니메이션 산업의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활동하는 기획/제작자가 되는 것 말이죠. 전 기회를 계속 노릴 거예요.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에요. 하하.


현직 애니메이션 프로듀서입니다. 아이들을 위한 재밌고 유익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제 일을 하면서 느끼는 점, 재미있는 일화, 또는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한 정보들을 같이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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